제목을 '체 게바라를 위한 변명'으로 해야 할까 생각해봤지만 이건 아니었다. 그는 변명이 필요없는, 세계인이 추앙하는 역사인물이다. 이런 어이없는 사건에 그를 주범처럼 올리는 일은 무게있는 역사인물에 대해 너무 무례한 짓이 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T셔츠는 무죄다. '티'로 칭해지는 단순한 상의는 그 경제성과 편함 때문에 전세계인의 국민복이 된 지 오래다. 저고리든 공장노동자 작업복 상의 아래든, 제복이나 교복 속이든 아무 데나 입는다. 무한대의 조합과 연출이 가능하다.

체 게바라 티만 해도 어떤 인터넷포털의 쇼핑몰에는 134종이나 올라있고 11번가에 53종,옥션에 61종, 다른 곳에도 체 게바라의 온갖 초상 티가 넘친다. 6000원대에서 외국제 6만~7만원대까지 엄청 많다. 이 초상은 이제 이념적 인물이 아니라 인기 아이콘이자 도상(圖像)이며 친숙한 생활이미지가 되어 있다.

한복 저고리 속에 수십명이 똑같은 티를 구해 입기가 어려워 어느 학부모가 지난번 행사때 사준 옷을 겹쳐 입었다는 광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의 의상을 마치 사회주의 혁명가를 위장잠입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보는 사람의 발상과 붉은 색안경이 놀랍다.

더구나 그는 다른 곳도 아닌 광주에서, 그것도 8·15광복절 경축식에서, 이 티셔츠의 그림을 문제 삼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시청앞 광장의 붉은 파도가 생각난다.

'붉은 악마'가 붉은 티셔츠를 입었다고 색깔론을 들고 나오던 일부 극우보수세력은 그 붉은 인파가 거의 전국민이 되고 전국으로 세계로 번져나가자 응원참가를 독려하는 가슴팍의 'Be the Reds' (해석에 따라선 '빨갱이가 되자'일 수도 있다)대해서도 직접 공격이나 시비를 포기했다. 한동안 우리 사회가 월드컵 덕에 레드 콤플렉스를 극복했다는 의견이 쏟아질 정도였다.

■합창단의 체 게바라 티도 무죄
전세계의 해외토픽 외신뉴스 감으로 손색이 없는 이번 체 게바라 사건을 '기록을 위하여' 다시 정리하면, 광주시의 8·15 제68주년 기념행사 프로그램으로 시립소년소녀합창단이 사회주의 혁명가 체 게바라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공연을 했다. 이를 본 전홍범 광주보훈청장이 강운태 시장에게 '국가기념행사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광주시는 당일은 '연출에 다른 의도는 없고 공연내용도 광복절 기념행사에 걸맞는 훌륭한 수준'이라며 문제삼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18일 태도를 바꾸어 합창단 지휘자 이 단장(37·여)을 징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민형배 광주 광산구청장은 징계소식이 '충격적'이었다며 "체 게바라 의상이 논란이 된 '광주는 빛이어라'가 울려 퍼질 때 시장이 무대에서 합창단원과 춤을 추었고 벅찬 흥으로 나도 무대 아래서 춤추고 뛰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공연 다음날 단장 중징계 검토로 돌아서 사상적 재단을 하려는 태도는 도를 넘은 문화적 테러"라고 그는 주장했다. 예술작품인데다가 체 게바라가 자유와 인간해방을 꿈꾼 혁명가이니 광복절과 체 게바라가 만나는 것이 부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광주시민단체협의회도 19일 성명을 내고 '광주시가 앞뒤 정황을 따지지도 않고 잘못이라고 인정해 시민의 명예와 문화적 자존심을 실추시켰다'며 징계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5·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금지했던 국가보훈처장의 행태를 기억하는 시민들은 "지방보훈청장의 몰상식한 말에 휘둘린다면 민주·인권·평화를 주창하는 광주의 정체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지휘자 중징계는 문화적 테러'
기실 광주시가 뒤늦게 징계를 결정한 것, 최근 국정혼란과 촛불시위 속에서 국가보안법에 의한 이념단속과 공안회귀 조짐이 보이는 것이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지방보훈청장의 '부적절한 의상' 지적에 깃든 우려와 공직사회의 '얼차려' 분위기가 연결된 듯한 이번 사건은 세계적인 문화예술 도상으로 자리잡은 체 게바라 초상까지 연루(?)되어 주목거리다. 가뜩이나 남북협상 재개로 외신의 이목을 끈 김에 화끈하게 한국은 아직도 반공을 국시(國是)로 하며 체 게바라를 증오하는 사회로 간다고 선전하는 거나 같다.

새 정부의 '한반도 프로세스'가 공안정국 국보법시대로의 '거꾸로 프로세스'임을 만천하에 공표할 셈이 아니라면 빨리 지휘자에 대한 징계를 거두고 지휘자 징계로 상처받은 어린 합창단원들에게 사과하는 게 국가 이미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