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이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고 했던 처서(處暑).

처서는 일 년 이십사절기 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기다리는 절기라고 한다.
가을이 기지개를 켠다는 입추(立秋)와 이슬이 서리를 흉내 내 흰색을 띠기 시작한다는 백로(白露) 사이에 들어 있는 절기인 처서는 `처(處)’ 자의 새김(訓) 중엔 `그치다’는 뜻도 있어 `더위가 그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유난했던 올 여름 이상고온 폭염에 모든 사람들은 지칠 만큼 지쳤을 것이다.

마음의 앙금까지 모두 씻기우는듯 시원한 장대비 내리는 오늘, 와야 할 비이긴 하지만 하필 처서인 오늘 내리는 비는 농업인구가 많은 화순의 농민들을 생각하면 마냥 반가워할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처서에 비가 내리면 ‘십리에 천석(千石) 감(減)한다.’라고 하거나 ‘독 안의 든 쌀이 줄어든다.’는 말이 있을 만큼, 처서 무렵의 날씨는 한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하여 처서우(處暑雨)는 한창 알이 차는 곡식에 큰 피해를 주기에 이 시점에선 축복일 수 없다.

무엇이 한꺼번에 성(盛)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 “처서에 장벼(이삭이 팰 정도로 다 자란 벼) 패듯”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처서 무렵이면 벼의 이삭이 패는 때이고, 이때 강한 햇살을 받아야만 벼가 성숙할 수 있기 때문에 처서 무렵의 날씨는 햇살이 왕성하고 날씨는 쾌청해야 한다.

봄부터 계속된 가뭄,
이어지는 여름철 폭염에 처서우까지,,,

그러나 어쩌랴~
자연현상을 어찌할 수 없는 게 인간의 한계인 것을.

처서 무렵의 장마나 태풍으로 인해 우리 농민들에게 피해가 없고 오늘 내린 '처서우'는 농민들에게 단비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2013년 8월23일, 처서가 저무는 시각에 김춘수시인의 시 한 편 올려본다.

처서 지나고

김춘수

처서 지나고
저녁에 가랑비 내린다.
泰山木 커다란 나뭇잎이 젖는다.
멀리 갔다가 혼자서 돌아오는
메아리처럼
한 번 멎었다가 가랑비는
한밤에 또 내린다.
泰山木 커다란 나뭇잎이
새로 한 번 젖는다.
새벽녘에는 할 수 없이
귀뚜라미 무릎도 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