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엔 명산이 많다. 배산임수, 명당 터를 이루는 무등산 만연산 안양산 그 정기는 단연 이 고을의 으뜸 풍광이다. 기로 말하면 한 짐 지고도 철철 넘치는 왕운이다. 하니 그 큰 산 아래 큰 인물이 없을 손가.

가장 가까운 근현대사 속에서 떠오르는 인물, 깨끗한 정치인으로 一愚 박민기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조국현 선생의 제헌국회 그 바통을 이어받아 제 자리 잘 지킨 그 흔해빠진 수많은 출세자 중에 단연 군계일학의 인물이었다. 6.25 한국전쟁 그 불안한 격랑 속에서 제 길을 잃지 않고 초심을 지킨 지조인, 그 민주투사의 이미지는 너무도 선명하였다.

한국전쟁을 극복한 대한민국, 그러나 그 공을 혼자서 독식하려는 독재적 정치가 아부족에 둘러싸여 일당독재로써 리승만 대통령이 민의를 배반하자 민권투쟁의 선봉에 서서 송죽회를 조직하고 끊임없는 투쟁을 전개했다. 세비나 축내고 은행창구 명함 내밀며 자기 이권에 눈먼 브로커 정치인 우글거리던 그 시절 그분은 읍내 중심에 살면서도 전기를 거부하고 촛불을 켜고 오두막을 지켰다. 저항의 몸짓이었고 깨끗한 정치인 청백리의 모범이었다.

그분이 고희를 맞던 때 후배 한 분이 와서 고희를 맞는 일우 선생께 점심이라도 한상 대접하는 게 도리가 아닌가 말했다. 소생도 응하고⌜살아있는 세한도⌟라는 축시를 써가지고 조그만 한식집에서 식사하기 전 그 졸시를 낭독했다. 의인은 군중이 알기보다 의인이 알아본다. 어찌 홍곡(鴻鵠)의 마음을 연작(燕雀)이 알 것인가. 스스로 의인의 길이 힘겹고 고되어 숨 막히는 오늘이지만 제 살길 바쁜 세인들 세월 앞에 모두다 과거를 잊고 만다. 과거를 쉽게 잊으면 그 오류와 고통을 다시 되풀이 한다고 한다. 4.19 일당독재에 항거한 민주투쟁의 역사, 5.18민중항쟁의 그 피눈물의 역사, 일제 36년의 치욕 분단, 68년의 이 미몽과 고통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정리 없이 새로운 세상은 결코 오지 않는다.

화순이 낳은 인물 일우 박민기 선생 '살아있는 세한도' 그 분이 타계한 지도 세기를 바꾸고 수십 년이 흘렀다. 그러나 그분이 성장했던 모교 화순읍 거리 무등산 만연산 그 어느 산자락에도 그분을 기리는 비하나 서있지 않고 정출다문(政出多問 )정치 아는 척 떠드는 자 많아도 선배님 기리는 추모식 하나 없이 지금도 권자 노리는 장상배 아귀다툼만 소란스럽다.

춘곡 강동원(향토사학자. 시인)외 수인이 모여 그분의 이름이라도 안 잊었으면 좋겠다 하였다. 입비를 위한 발기문을 작성하고 조그만 송시를 썼지만 아직도 성사여부 소식은 감감하다. 앵남리 앵무봉에 외로이 모서져 있는 퇴락한 지강(芝江)선생의 묘소와 함께 일우 박민기 선생도 잊어서는 안 될 화순의 자랑이자 문화유산이다.

명산이 있어 인물이 나고 인물이 있어 역사가 만들어 진다. 유방백세(流芳百歲) 유취만년(遺臭萬年)이란 풍자어 그대로 요즈음 세상은 어찌된 셈인지 더러운 이름은 우리의 주변 떠나지 않고 시끄럽게 하건만 향기론 이름 묻히고 희미해지니 금석이 무상하고 애석타 아니할 수 없다. 홍곡은 제쳐놓고 연작들만 시끄럽게 지저귀면 이 귀를 어디다 씻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