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를 품은 고사정

화순읍 삼천리에 잘 자란 회화나무 한 그루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예부터 회화나무는 조상이 가까이 두고 아끼던 나무로 학자수(學者樹)라 불렸다. 선비의 고고한 정신을 상징한다고 여겨왔으며 임금이 신하에게 하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마을 한쪽에 하늘 높이 펼친 회화나무가 마을을 품고 있다. 회화나무 아래 고사정(高士亭)이 있다. 소담한 풍경을 담은 앞뜰에는 의병청지(義兵廳址)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당시에 의병들이 먹었던 우물이 맑게 담겨있으며 수령 2백 년의 아름드리 회화나무가 역사를 지키고 있다. 또한, 이곳에 무려 99칸짜리 고택이 있었다고 전해온다.

고사정 자리는 임진왜란 발생 이후 문홍헌이 상중(喪中)인 최경회를 찾아와 거병(擧兵)을 건의하며 의병장이 되어달라고 부탁했을 때 경운(慶雲)과 경장(慶長), 경회(慶會) 형제들이 향리에 설치한 의병청(義兵廳)으로 최경회(崔慶會; 1532년~1593년)가 주도한 화순의병의 발생지였다. 의병청을 설치하고 여러 고을에 격문을 보내 5백여 명의 의병을 조직하여 의병장 고경명을 도와 그 휘하에서 싸우게 하였다.

1678년(숙종 4년) 최후헌(崔後憲)이 건립하였으며 임진의병장 최경장의 손자로 최홍우의 아들이다. 최홍우는 임진왜란 시 의병에 가담하여 금산 무주 개녕전투에 전공을 세웠다. 또한, 그의 부친 최경장이 의병을 일으키자 군관을 맡아 군기 등을 수합하였으며 의병부대가 김덕령 부대에 합해지자 고향에 돌아와 학문에 전념하였다. 조정에서는 임진왜란이 끝나자 최홍우에게 그의 전공을 치하하고 세마(洗馬), 좌랑(佐郞), 별제 등의 관직을 제수하였으나 최홍우는 일체 관직 제수를 사양하였다. 인조는 최홍우의 충정을 기리어 ‘남주고사(南州高士)남쪽의 높은 선비’란 칭호를 내렸다. 후손인 최후헌이 위국충절(爲國忠節)을 기리기 위해 고사정(高士亭)을 세웠다. 고사정의 현판은 당대 유명 서예가인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가 쓴 것으로 문화재급 현판글씨와 고사정 팔경시(八景詩)도 누각 안에 걸려 있다.

원교 이광사는 한호(韓濩, 1543-1605) 이후 조선 후기 서풍(書風)의 조선화(朝鮮化)에 마침표를 찍은 인물로 평가된다. 이광사는 왕희지(王羲之, 307-365)의 글씨로 대표되는 육조시대의 서풍을 통해 자신의 글씨를 이루었다. 빠른 붓놀림과 글씨의 획에 깃든 힘으로 글씨가 살아 움직이는 듯 동감(動感)과 흥취가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춘곡(春谷) 강동원(姜東元) 선생(先生)은 현재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고사정을 도문화재로 승격시켜야 한다고 강변한다. 최경회 장군 삼형제가 태어나 학문을 익힌 대표문화유적지를 방치해두고 있어 안타깝다며 문화재의 전통모습 복원을 갈망하고 나섰다. 여러 차례 보수과정을 거치며 콘크리트가 고사정을 지탱하고 있는 모습에 실망의 눈빛이 가득 담겨있다.
또한, 화순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적지로 손꼽히는 고사정이 지방문화재로 머물러있어 문화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이야기한다. 주변 환경을 정화해 임란때 의병훈련장소의 기록을 입증할 옛터를 복원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이야기한다. 방치된 우리의 문화유산을 부러 찾아오는 외지인들에게 안타까움을 주고 있어 부끄럽다는 강동원 선생은 ‘강릉의 선교장(船橋莊)’처럼 우리 지역에도 문화와 전통을 살린 아름다운 명소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전라도에 99칸 기와집으로 해남, 구례, 화순이 유일하다고 한다. 최경회 장군의 숨결이 배어있는 집터가 그곳이다. 당시 99칸 고택이 있었다는 자료가 해주최씨 족보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며 최경회 장군 삼형제가 태어난 99칸 고택을 복원해 지역 손님을 위한 숙소로 제공하는 것도 문화의 맥을 찾아 계승한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불의의 사고로 소실되어 현재는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지만, 본체가 3층으로 구성되어 있어 사가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특별한 구조라고 한다.

춘곡 강동원 선생의 욕심처럼 지방문화재의 도문화재승격은 문화재 품격 높여 문화재의 수리, 예방관리와 함께 지방예산 절감 효과도 예측할 수 있다. 문화재를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훼손을 예방하고 보수·관리할 수 있다. 또한, 고택복원으로 민박체험, 세미나 등으로 다양한 활용도와 함께 지역홍보도 함께 진행할 수 있다.
관광객들의 문화적 호기심을 단순한 관심거리로 전락하지 않게 볼거리와 함께 먹거리의 계발을 통해 화순의 대표 음식을 만들어낸다면 청정화순의 이미지와 함께 남도음식의 기준을 새로 써내려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남쪽 고을에 높은 선비가 여기 있구나!” 찬탄하며 고고한 선비의 정신에 ‘남주고사(南州高士)’의 칭호를 내렸다는 인조임금의 마음을 되새기며 우리 지역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잘 보존해나가야 할 것이다.
관아를 복원한 가까운 나주시 ‘나주목사내아 금학헌(琴鶴軒)’의 경우 민박체험지로 각광받고 있어 지역의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릉 선교장’처럼 관광객 숙소로 활용가치가 높은 고택 복원과 함께 남도의 맛을 담은 전통음식까지 개발해낸다면 우리지역을 알리는 일거양득의 관광산업으로 지역경제에 기여할 것이다. 관광객들에게 문화와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고택의 아름다움으로 화순에서의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주자.
춘곡 강동원 선생 : 010-5665-3360

▲ 의병청지 표지석

▲ 이광사의 문화재급 현판

▲ 고사정 앞 들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