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례씨 찾아 남면 사평 가는 길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헤아릴 수 없는 사연 혼자 지닌 채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우리가요 ‘여자의 일생’ 가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참으면서 눈물로 보낸다고 했는데 , 화순남면 사평에 가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결코 울지 않고 고달플 때마다 긍정(肯定)의 힘으로 ‘고통을 새로운 꿈’으로 바꾸면서, 밀알처럼 영근 알찬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여인이 있다.

▲남면 면사무소 앞 표지석

■질경이 닮은 여인 김영례씨

“밥 먹고 사는 것만도 크나큰 감사다”라고 인터뷰 말문을 여는 영례씨는 화순동복 구암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 남면 석복마을로 이사 왔다.

구암에서 다복하게 살았던 영례씨네 가세(家勢)는 석복마을에 살면서 부터 기울기 시작했고 8남매중 6째인 영례씨는, 오리와 닭을 키우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사평중을 책가방도 없이 책보자기 들고 다녔다한다.

화순광업소를 사직한 영례씨 부친은 병환중이고 모친은 신경통으로, 위로 오빠와 언니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례씨는 어린 시절부터 가장역할을 해야 했다.

사평중 1회 졸업생인 영례씨는 중학교 졸업이 후, 서울로 올라가 수도여고 야간부를 다니며 낮에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는, 시간에 쫓기는 생활이었다.

하지만 배움의 열정이 가득했던 영례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전문대유아교육과를 졸업할 때까지 꽃꽂이, 볼링(average180), 목공예, 사탕부케 등을 배웠고, 훗날 사탕부케 아르바이트 하여 번 돈으로는 영례씨 오빠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고 동생들 뒷바라지를 한다.

▲영례씨 닮은 질경이

■내가 벌어 내가 산다

자수성가(自手成家)의 전형 김영례씨.
결혼 이후 2남매를 둔 영례씨는 큰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남편과 사별한다.

과음(過淫)으로 병을 얻은 남편과의 사별로 영례씨는 힘들었지만 마음 추스릴 여유도 없이 현실적으로 어린자녀들을 돌보아야 하는 의무감으로 보성 예당에 식당을 차린다.

가파른 언덕길을 음식 가득한 쟁반 이고 배달해야했던 영례씨는 질곡의 삶속에 문득, ‘어차피 주어진 거라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운명을 깨달았다.

어느 순간 과로로 인하여 정신이 몽롱해지면 영례씨의 뇌리엔 아주 맑은 환상이 떠오르곤 한다고. 푸르른 초원, 졸졸 흐르는 시냇물,,,그러면 영례씨는 자신이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그러한 휴식은 심신(心身)이 고단한 영례씨에게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영례씨는 고난 속에서 새로운 꿈을 다시 꾸게 한다.

▲영례씨에게 선물하고픈 6월의 장미

■꿈은 이루어진다.

꿈은 이루어진다.
일하는 즐거움을 어디에 비하랴!

‘운명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에게 주어진 인생을 그냥 순응하며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영례씨.

영례씨는 2004년 화순 읍내에서 야식집을 운영하다가 위장병을 얻는다.
그리하여 선택하게 된 귀향.
어린 시절 식물이 잘 자라고 열매를 맺는 걸 보면 마음이 뿌듯했던 기억을 되살려 영례씨는 농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만난 지금의 남편 민형기씨.
민형기씨는 지적장애를 지닌 2명의 형과 동생을 둔 어려운 처지였다.
하지만 민형기씨가 가진 모든 악조건을 마음과 몸으로 받아들인 영례씨는 지금도 10여년 넘게 한집에서 4명의 정신지체아인 시아주버니와 시동생들을 돌보며 농사일을 겸하고 있다.

어쩌면 영례씨의 인생여정은 끝없이 굴러 내리는 바윗돌을 다시 들어 올려야 하는 시짚스의 고뇌를 닮은 듯하다.

청소년시절은 편찮은 부모를 대신하여 가족부양 하느라 젊음을 보내고, 결혼 후엔 남편과의 사별로 혼자서 아이들을 키워야 했던 영례씨. 다른 이들은 편하게 살려고 재혼 하는데 정신연령이 유아적(幼兒的)인 노년기(老年期)에 접어든 시아주버니와 시동생들 뒷바라지하며 살고 있는 영례씨의 일생은 기구하다는 생각보다는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닥치는 현실을 순응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영례씨 이지만, 한 시절은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발병한 홧병으로 인하여 치아(齒牙)가 모두 손상 돼 지금은 틀니에 의존하게 되고, 후각(嗅覺)기능 까지 상실하게 되었지만 다행히 뒤늦게나마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고통(苦痛)과 회의(懷疑)의 늪으로 빠질 때마다 새로운 희망을 설계하며 꿈의 목표치를 더 높게 설정하며 나아갔다.

그 결과, 지금은 남면 일대에서 50,000평 규모의 벼농사와 대규모 비닐하우스 고추재배, 노지(露地) 고추농사 및 마늘, 감자를 경작하는 대부농(大富農)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영례씨의 하루 일과는, 집안의 모든 일과 식사준비, 그리고 농사일까지 혼자 힘으로 해내느라 이른 새벽 부터 늦은 밤까지 고달프고 분주하다.

그렇다고 일에만 전적으로 매달리지 않고 현명하게 시간을 안배하여 교육도 받고 자신의 생활도 조금은 즐긴다고 한다.

▲영례씨네 비닐하우스 고추

▲노지고추밭

▲모내기를 기다리는 논

▲옥수수밭

▲잘 된 마늘을 뽑아들고 웃는 영례씨

▲깨모종 돌보는 잠시도 쉬지않는 영례씨

■‘열심히 일한 자, 그대는 누릴 권리가 있다.’

전남 농업인 마이스터대 4년 과정과 최고경영자(C.E.O)과정을 수료한 영례씨는 요즘 남편 민형기씨와 함께 농기센터에서 농업인 고추대학과 강소농 교육과정을 함께 수강하고 있으며
, 망중한(忙中閑)을 이용하여 남편 민형기씨와 풍광 좋은 곳 나들이도 하고 맛난 음식을 맛보는 낭만도 누리고 산다.

앞으로의 소망을 묻자 영례씨는 이·미용(理·美容)을 배워 불우이웃들의 이·미용을 해주고 싶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자신이 가지지 못한, 하고 싶은 것을 배워 그 재능을 사회에 기부하고 싶다는 영례씨. 베풀면 사는 것을 몸소 실천하는 영례씨의 아름다운 마음이 엿보이는 포부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처럼, 평생 자신에게 주어진 힘겨운 운명을 어머니처럼 보듬는 마음으로 받아들여 오늘도 새로운 희망을 설계하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영례씨와 인터뷰를 끝내면서, 문득 내 자신을 질책하듯 떠오른 시 한편 적어본다.

뭘 했니, 여기 이렇게 있는 너는.
울고만 있는 너는
말해봐 뭘 했니?, 여기 이렇게 있는 너는
네 젊음을 가지고 뭘 했니?

폴 베를렌느 (Paul Verlaine)

▲고추비닐하우스에 선 영례씨와 남편 민형기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