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일본 여행시 오오사카 신사앞에서 어머니랑 함께

작년 10월 내 생일(生日) 아침, 나의 어머니는 내 생일 상 차리러 누워계시던 요 위에서 일어서다 그대로 펄썩 주저앉으면서 척추 제1번 뼈가 으스러졌다.

2차례에 거친 대수술을 하시면서 회생불능도 염려 했지만 어머니는 지금 겨우 거동하실 정도의 체력을 갖추고 계신다.

생존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참으로 다행스럽다는 마음과 함께 지나간 세월, 어머니 속 어지간히 썩이던 불효했던 나날들을 반성해본다.

천성이 부지런하고, 현모양처(賢母良妻) 전형(典型)인 나의 어머니.

나는 유년시절 공무원이던 아버지 부임지 따라 초등학교 3학년 때 까지 전남 도서지방 및 산골일대를 여행(?) 하며 살았다.

하학 후 집에 다다르면 언제나 울타리 밖에서 큰 소리로 ‘엄마’ 부터 부르면서 집에 들어서곤 했는데, 어머니가 오빠와 동생이 살고 있는 도시의 외갓집에 급작스레 다니러 가시는 날이면 참으로 마음이 쓸쓸했던 기억이 난다.

항상 맛난 음식을 직접 만들어 주시고, 풍요롭지 못한 가정형편에도 좋은 상급학교 진학을 기꺼이 응원하시며, 아침 등교 시엔 마루 밑에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신발을 내가 편하게 신을 수 있도록 몸을 구부려 가지런히 놓아주시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며 고등학교 시절까지 나는 공부 잘하고, 품행(品行) 방정(方正) 한 딸로 성장했다

하지만 대학 입학 후, 나는, 나의 부모님이 원하는 착한 딸이 못되고 연애(戀愛)에 몰두하게 되자 내가 걱정된 어머니는 서울에 올라오셨다.

당시 기숙사 생활 하던 나를, 청파동(靑坡洞 )학교 초입 언덕에 새로 단장한 조용한 까페로 찾아오신 어머니는, 내가 어머니의 설득을 듣지 않자 한참동안 눈물을 흘리시다가 다시 시골로 내려가셨다.

많은 세월이 흘러간 지금, 분홍색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닦으시던 하얀 모시 치마저고리 차림의 어머니 모습이 기억에 선연하게 남아, 요즘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 무슨 이유일까..

김 구(金 九)선생의 백범일지(白凡日誌)에는, 감옥에 있는 김구선생 옥바라지를 위해 감옥근처 물상객주집 식모가 되어 하루 세끼 감옥에 밥을 넣어주던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여사를 회상하며, 김 구선생이 쓴 글귀가 있다.

「옛사람이 ‘애애부모(哀哀父母)여 생아구로(生我劬勞)셨다’라 했지만, 나의 부모님은 낳으실 때도 크게 구로하셨고 먹여 살리는 데도 천중만금의 구로를 다 감당하셨다. 불서(佛書)에 부모와 자녀는 천생백겁(天生百劫)에 은애소유주(恩愛所遺注)라 한말이 허언(虛言)이 아닌 것이다.」라고...

어린 시절에는 우리4남매가 건강하게 잘 자라, 도시로 나가 고등교육 받을 수 있도록 따로 경제활동 하시느라 고생한 어머니가, 이제는 나이 든 딸을 위해 미역국 끓여 생일상 준비하시려다 허리를 다치셨다.

10여 분 차로 달리면 부모님 계시는 곳에 다다를 수도 있지만, 일 바쁘다는 핑계로 고작 한 달에 두어 번 밖에 찾아뵙지 못하는 나를 전혀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나의 끼니걱정 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부모사랑은 ‘내리사랑’ 이라는 걸 새삼 다시 깨닫는다.

신(神)은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구월심 자녀들의 안위와 성공을 기원하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께 사랑과 존경심을 보내면서, 따사로운 햇살 가득한 이 봄날, 집안에서 지내시는 나의 어머니에게 이글을 드리고 싶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찔레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