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방울꽃

■5월1일, 노동절(May-Day)

비지스(Bee Gees)의 ‘First of May’로 친숙하게 다가오는 5월.

5월1일은,  1886년 5월 1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하루8시간 노동제 쟁취를 위해 파업을 선언하고 유혈탄압 하는 경찰에 항쟁하다 학살 당한  노동자들을 기념하기 위해, 1889년, 세계 각국 노동운동지도자들이 모여 결성한, 국제사회주의자회의(International Socialist Congress) 제2차인터내셔날 창립대회에서, 세계노동절(May-Day, 한국에서는 근로자의 날)로 지정한 날이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 혁명 100주년인 1889년은, 제2차 인터내셔널 대회가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장 입구에 에펠탑(La Tour Eiffel)이 건립된 해이기도 하다.

메이 데이인 5월1일, 프랑스에서는,  ‘은방울꽃’을 선물 받으면 일 년 내내 행복이 찾아온다고 하여, 가족과 친구들, 연인들에게 은방울꽃을 선물하는 아름다운 풍습이 있다.

■muguet(뮤게, 프랑스어로 은방울꽃)를 알게 된 사연

삶을 살아가다보면 문득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아프게, 그립게 나름의 추억 유형으로 떠오르는 사람들,,

나에게는 해마다 5월1일이면 그립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나오꼬 가미다(Naoko Kamida)

시절을 거슬러 올라가, 1985년 5월1일 아침, 나는 같은 기숙사에 살고 있는 일본인 친구 나오꼬가 방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문 틈으로 얼굴만 내민 나에게 나오꼬는, 하얀 꽃들을 줄지어 피우고 있는, 작은 꽃다발을 내밀었다.

이른 시각, 뜬금없는 꽃 선물에 어리둥절하면서도, 당시 꽃 이름을 모르던 나는 무슨 꽃이냐며 물었고 나오꼬는 ‘muguet(뮤게)’라 답하면서 ‘5월1일 아침, 뮤게를 선물 받으면 일년 내내 행운이 따른다.’는 전설(傳說)도 들려주었다.

방안으로 안내하는 나에게 나오꼬는, 자신이 존경하는, 고인(故人)이 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탄생일을 맞아 스위스에 있는 묘지로 참배 간다며 총총히 돌아섰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나오꼬가 선물 해준, 생전 처음 보는 뮤게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넓은 초록잎에 하얀 작은 꽃이 종(鍾)형상(形象)으로 길게 매달려있는 뮤게.
앙증맞은 꽃모습이 작은 체구의 나오꼬와 닮은 듯했고, 꽃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가 나오꼬의 청순(淸純)한 우정(友情)처럼 전해져오며, 행복함이 잔잔한 파도로 물결 지으며 마음속으로 퍼져나갔다.

■나오꼬의 추억

노동절을 하루 앞둔 오늘, 프랑스에 살면서도 프랑스문화에 대해 무지(無知)하던 나에게, 선진문화의식을 간접적으로 심어주던 고마운 나오꼬와 처음 만난 날을 잠시 추억(追憶)해 본다.

내가 나오꼬를 처음 만난 곳은 외국인 기숙사 공동취사장에서였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던 기숙사는 대부분 서양인이었고, 동양인은 소수의 일본인과 한국인, 중국인이 살고 있었다.

미테랑((Franois Maurice Marie Mitterrand) 사회당 정부 체제 하에서 인종차별이 좀 심하던 당시, 취사장에서 동양인들을 만나면 우리는 서로 국적(國籍)을 불문하고 반가워하였는데, 처음 보는 나오꼬는 아주 작은 키에 얼굴에 주근깨 가득한 ‘못난이 고무인형’을 닮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일본 여인 특유의 상냥함을 지닌, 예의 바르고 지성적인 나오꼬에게, 나는 음식 만드는 몇 십분 동안에 친구하고 싶다는 결정을 하게 되었고 우리는 서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좋은 우정을 나누는 친구사이가 되었다.

나오꼬는 일본 장야현(長野縣)출신으로 불어불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소르본느대학(Universite de la Sorbonne)으로 유학 온  나보다 나이가 2살 많은 학생 이었다.

서로의 전공(專攻)과 다니는 학교가 달라 자주 얼굴을 대할 수는 없었지만, 나오꼬는 언제나 언니 같이 자상했으며 먼 곳으로 여행을 가게 되면 문학도(文學徒)답게 엽서에 여행지소식을 매일 일기형식으로 써서 보내주어, 마치 내가 그 여행지에 같이 가 있는 거 같은 느낌을 안겨주기도 했다.

한번은 배낭여행 떠나는, 평소 김밥 좋아하는 나오꼬를 위해, 나도 공부하느라 시간에 쫓겨 전기밥통에 남아있는 밥을 대충 참기름과 통깨 넣고 비벼, 김에 돌돌 말아 점심으로 싸주며 배웅한 적이 있는데, 나오꼬는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예쁜 인형을 선물로 가져 와 ‘기차에서 김밥을 눈물을 흘리면서 맛있게 먹었노라’고 고마워하던 기억이 새삼 새롭게 떠오른다.

사소한 것에도 항상 감사하며, 인생을 잘 불어진 풍선처럼 치열하게 살던 나오꼬.

아직도 나오꼬의 목소리와 얼굴은 또렷하게 나의 귓전과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귀국 이 후, 나의 실수로 마지막 연락처를 잃어버려 지금은 소식을 알 수 없는 나오꼬가 해마다 돌아오는 5월1일이면 아련하게 보고 싶어진다.

‘봄의 아름다운 절정을 보여주는 계절의 여왕’ 5월.

지금 ,지구(地球) 어느 하늘 아래엔가 살고 있을 나오꼬에게, 5월1일을 맞이하면서 ‘뮤게’ 대신 신석정(辛夕汀)시인의 ‘은방울꽃’ 시를, 그리운 마음 담아 띄워보낸다.

은방울꽃

신 석 정

나는
그때 외롭게
산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나뭇가지를 옮아앉으며
'동박새'가 울고 있었다.


어쩜
혼자 우는 '동박새'는
나도곤 더 외로웠는지 모른다.

숲길에선
은방울꽃 내음이 솔곳이
바람결에 풍겨오고 있었다.

너희들의
그 맑은 눈망울을
은방울꽃 속에서 난 역력히 보았다.

그것은
나의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너희 가슴 속에 핀 꽃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