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내내 어릴 적 기억 속의 낙서처럼 친근한 그림과 천진한 글이 부지런한 세월에 물들어버린 마음에 아련한 기억의 향기를 전해주는 듯하다. 가난한 화가의 영화 같은 삶에 대한 몸부림이 무지갯빛으로 색칠된 『바보 화가』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 하나로 어두운 절망의 늪을 현명하게 헤쳐나가고 있다.

꿈꾸는 화가 몽우는 어릴 때부터 그를 따라다니던 백혈병, 암 덩어리들로 스무 살을 넘기기 어려울 거라는 시한부 선고를 듣고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다 죽겠다는 생각으로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한다. 예술적 감성이 넘치는 아버지를 지켜보며 자란 저자는 자연스럽게 그림을 배웠다. 그 후 청소년기에 유태인 스승을 만나 본격적인 예술 분야를 깊이 있게 접하는 계기가 되어 화가 몽우의 재능에 빛을 더해주었다. 죽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전시회를 열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인사동 길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던 몽우는, 미국에서 이틀 만에 500점의 작품이 매진되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 물정 모르고 시작한 사업으로 1년 만에 빚더미 위에 올라앉게 되고, 사업실패로 건강악화와 절망에 빠진 가난한 인사동 노점화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세상을 등지고 돌아앉아 마음의 벽을 두껍게 색칠했다. 그러나 그의 존재 이유가 되어 준 그림과 가족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심이라는 작은 희망의 불씨를 지키며 눈물겨운 노력으로 꿈을 그리는 화가로 세상을 향해 다시 붓을 들었다. 잠시의 성공과 긴 좌절은 그를 겸손하고 성숙한 화가로 만들었고 간절하게 소망했던 전시회도 열게 되어 ‘한국의 피카소’ ‘호당 1억짜리 화가’라는 수식어까지 얻게 되었다.

몽우가 화폭에 담고 싶어 하는 그림은 아픔과 슬픔까지도 기쁨으로 승화하여 사람의 마음속을 움직이는 힘과 꿈을 줄 수 있는 그림이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처럼 몽우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꿈을 꾸는 작품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일념으로 화가로서의 자존심을 지켜왔다. 똑같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자신의 작품세계에 사망신고라고 생각한 몽우는 자신의 작품을 똑같이 그려달라는 중동의 거상으로부터 500억 원이라는 거금을 거절하며 강한 자존심을 보여준다.

그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고 꿈을 향해 나가는 몽우 감정이 깊이 투영되지 않았다고 느낀 작품에 대한 부끄러움, 돈의 노예라는 비참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은 작품을 불태우는 행동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괴짜 화가’라는 수식어와 함께 자기만의 화풍을 만들어 왔다.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과 숨쉬기조차 어려운 몸의 통증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은 가난하고 병든 길거리 화가는 ‘천재 화가’라는 세상의 뜨거운 관심에 서 있었지만, 종이값, 물감값 걱정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의 마지막 모습이 초라해 보일까 걱정하는 삶을 살아간다. 자신이 죽을 때 마지막 모습이 초라하게 기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 생사를 오가며 그림에 대한 열정을 색칠하는 몽우는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그림을 그린다.

작은 빗방울 같은 삶에 기쁨도 슬픔도 무지갯빛으로 채색하며 오늘도 그의 꿈은 계속 그려지고 있다. 화려한 학벌도 장황한 미사여구도 배경도 없이 그림만으로 평가받기를 원하며 영혼을 녹여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그의 꿈은 ‘그리움을 담는 것, 삶을 그리는 것’이며 그림에 혼을 담고 있다. 지독한 가난과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몸의 통증들, 그 속에서도 그림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살아온 그의 인생역정이 조금의 여유에 자만하며 살아가는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좌절할 시간도 없이 어려운 현실에 본능적으로 헤쳐나가야 하는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좌절의 시간조차 사치라고 느꼈을 몽우. 어려운 환경에도 좌절하지 않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하는 작가의 모습에 편안함을 추구하는 나를 부끄럽게 한다.

암울한 현실을 긍정적인 마음과 겸손함, 유머로 즐겁게 극복해나가는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힘든 상황 앞에 쉽게 절망하고 포기하지 말라며 잔잔한 감동과 따뜻한 격려를 하고 있다. 스물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던 그가 지금도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끝이 아닌 시작을 그리고 있다. 돈보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열정을 먼저 생각하는 그의 꿈은 계속되고 있다. 시한부라는 단어에 좌절할 시간도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은 바보 화가의 삶이 암담한 현실에 애태우고 스스로 추락하려는 사람들에게 한 가닥 희망의 동아줄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