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프랑스 중부 브르고뉴(Bourgogne)지방 디종(Dijon)에 살 때 일이다.

당시, 가난한 유학생 신분이던 나는, 계단을 오르거나 복도를 지나갈 때면 삐걱 삐걱 소리가 나는, 아주 낡은 목조 건물에 살고 있었고, 내 이웃으로는 ‘보몽(Beaumont)'이란 할머니가 있었다.

우리 아파트는 주로 북아프리카 출신 이주민이나, 저소득층 프랑스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보몽’은 프랑스인으로, ‘푸들’처럼 생긴 하얀 새끼강아지 한 마리 데리고, 홀로 사는 노인이었다.

하지만 ‘보몽’은 외모 외에는 할머니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청청한 목소리에 성격도 활달한, 부지런한 할머니였으며, 낯선 동양인인 나에게 매우 우호적이었다.

이른 아침 내가 학교 갈 때면, ‘보몽’은 어느새 복도까지 말끔하게 청소한 후, 거무스레하게 변한 복도 난간(欄干)에 가지런히 걸어놓은, 화려한 색상들로 꽃을 피우고 있는 ‘제라늄’ 화분에 물을 주며, 뭐가 그리 즐거운지 항상 들뜬 큰 목소리로 ‘봉 쥬~!(Bon Jour)' 인사를 하곤 하였다.
그리고, 아주 가끔, 내가 일찍 집에 들어가는 날이면 혼자 식사하기 외로운 ‘보몽’이 저녁식사 초대를 하곤 하였다. ‘저녁식사 초대’ 라고는 하지만, 거창한 것이 아니고 간단한 스파게티나 특별하게 잘 구어 진 바게트, 치즈, ‘보몽’ 자신이 직접 만든 달콤한 과일잼, 상큼한 드레싱(dressing) 얹은 샐러드 정도 준비하여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 날도 여느 저녁식사 초대 때처럼 보몽이 좋아하는 프리지어(Freesia) 꽃 한 다발 사들고 갔는데, ‘보몽’은 ‘강아지 생일’ 이라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그날의 저녁식사 테이블에는 프랑스 최고요리인 ‘달팽이(escargot)요리’도 차려져 있었다. 참고로 ‘보몽’은 강아지 이름을 자신의 이름과 같은 ‘보몽’이라 지어 부를 만큼 강아지를 자신의 자식으로 여겨서, 난 그 강아지를 ‘작은 보몽’이란 프랑스어 의미인 ‘쁘띠뜨 보몽(Petite Beaumont))’이라 부르곤 했다.

원래 모습도 귀여운 ‘쁘띠뜨 보몽’은 빨간색 예쁜 옷으로 단장하고, 족히 1캐럿(carat)은 넘어 보이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하고 있었는데 ‘보몽’은 ‘쁘띠뜨 보몽 생일선물’이라며 자랑하였다.

풍족치 못한 살림살이를 하는 ‘보몽’임을 아는데, 아무리 강아지를 귀(貴)히 여긴다 하더라도 ‘보몽’자신도 평생 가져보지 못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강아지에게 생일선물하다니..좀 놀라고 의아한 나는 보몽에게 물었다.
“할머니는 자신의 옷도 벼룩시장에서 사 입으면서 강아지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선물해주셨어요?”했더니 보몽은 “Quand on aime, On ne compte Pas.(사랑하면 계산하지 않는다.)”라고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였다.

일반인들은 납득하기 어려운, 조금은 이상한 취향의 할머니라 여길 수도 있지만, 아주 단순한 그 답변 한마디에 난, 내가 그간 미처 깨닫지 못한 ‘보몽’의 강아지에 대한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어느 정도 가늠하게 되었다.



그렇다. 사랑하면 계산하지 않는다.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진정한 모든 가치를 사랑하는 대상에게 부여하고 자신의 영혼과 물질적인 온갖 것을 송두리째 내어주고도 모자람을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브람스(Johannes Brahms)의 클라라(Clara Josephine Wieck Schumann)에 대한 연모(戀慕)가 그러하고,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을 향한 황진이(黃眞伊)의 지고지순한 연정(戀情)도 그러하다.

사랑의 대상은 국경도, 조건도 없다.

내가 디종을 떠나 파리(Paris)로 갈 때 기차역까지 배웅해주던, ‘보몽’의 따스한 마음 닮은 봄 햇살이 지금 화순에 내리고 있다.

우리 곁에 찾아온 사랑의 계절 ‘봄’
이 봄에는, 사랑을 모르는, 혹은 아직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 모두 ‘진정한 사랑’을 만나 ‘계산하지 않는 사랑을 하는 행복한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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