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릉은 조선시대 27명의 왕과 왕비 및 사후 추존된 왕과 왕비의 무덤을 망라한 것으로 한 왕조의 무덤이 이렇게 온전하게 보존된 사례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가 힘들다. 문화재청은 총42기의 조선시대 왕릉 중 북한개성에 있는 재릉(태조 원비 신의 왕후의 능)과 후릉(정종과 장안왕후의 능)을 제외한 40기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했다.

조선 왕릉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전문가들은 조선 왕릉은 단순히 왕의 주검이 묻혀 있는 무덤이 아니라 조선시대(1392-1910년) 519년의 역사를 포함해 당대의 건축양식과 미의식,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문화의 결정체라고 말한다. 국제기념물 유적협의회(ICOMOS)가 조성왕릉 40기 전체를 실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선 왕릉은 유교사상과 토착신앙 등 한국인의 세계관이 반영된 장묘문화 공간이고 자연경관을 적절하게 융합한 공간배치와 빼어난 석물 등 조형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며 제례의식 등 무형의 유산을 통해 역사의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왕릉조성이나 관리 의례 방법 등을 담은 구조오례의 의궤 능지 등 고문서가 풍부하고 조선왕릉 전체가 통합적으로 보존 관리 돼있는 점을 높이 평가 받았다. 한 왕조가 500년 이상 지속되며 재위한 모든 왕의 무덤이 남아 있는 경우는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고 중국 명, 청 시대의 황릉은 자연미를 엿볼 수 없는데 비해 조선왕릉은 과거와 현재가 살아 숨쉬고 있는 생생한 역사의 보고라는 점도 높은 점수를 받는데 일조했다.

세계유산으로 등록되면 인류전체의 소중한 문화 및 자연유산으로서 국제사회의 보호와 감시를 받게 된다. 해당 국가는 등재된 유산의 보존 실태를 담은 보고서를 5년에 한 번씩 유네스코에 제출해 재평가를 받아야 한다. 경제력이 부족한 저 개발 국가는 세계유산기금(World Heritage Fund)으로부터 기술적, 재정적 원조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세계유산 등재는 무엇보다 그 민족의 역사와 문화 속에 인류 공영의 문화상이 담겨 있다는 국제적 인증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영예롭다. 등재된 유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국가의 최상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이틀째 순례지인 왕릉이 오전 9시부터 입장객을 맞았다. 서삼릉(희릉, 효릉, 예릉, 의령원, 소경원, 효창원 등) 중 희릉(禧陵)의 주인공은 조선 11대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1491-1515)로서 파원부원군 윤여필의 딸이다. 1506년 중종의 후궁인 숙의로 책봉되었으나 정비인 단경황후 신씨가 폐위되자 1507년 왕비로 책봉되었다. 1515년 세자인 인종을 낳았으나 산후병으로 인하여 경복궁 별전에서 승하하였다.

능제는 병풍석이 없고 난간석만 두른 단릉으로 조선 전기의 능제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곡장이 둘러지고 석양과 성호가 봉분을 호위하고 장명등 문, 무인석 석마 등이 배치되어 있다. 예릉은 조선 25대 철종과 그의 비인 철인왕후 김씨의 능이다. 철종(1831-1863, 재위 1849-18630)은 장조(사도세자)의 증손자이며 전계대원군의 3째 아들이다.

1894년 헌종이 재위 15년만에 후사가 없이 승하하자 순조의 비인 순원왕후에 의해 영입되어 19세 때 창덕궁의 인정전에서 즉위 하였다. 재위14년 동안 처음 3년간은 대왕대비가 수렴첨정 하였고 그 뒤로 안동김씨의 세도로 인하여 국정을 바로잡지 못하였고, 1863년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하였다. 철인왕후(1837-1878)는 영은부원군 김문근의 딸로 대왕대비 의해 1851년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1858년에 원자를 낳았으나 곧 죽었다.

순례단들은 참배가 끝나고 해설사의 진지한 역사의 아픔을 들으며 나머지 릉참배를 다하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능묘 길을 걸으며 많은 생각에 잠겨 본다. 날씨는 어제보다 추위가 한풀 꺽인 것 같다. 순례단을 태운 버스는 왕릉순례지의 하이라이트인 구리시에 위치한 동구릉으로 향한다. 버스 안에서 홍보이사의 여러 가지 왕릉에 대한 안내 방송으로 흐뭇한 정감을 받으며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화회가 문화재 관리청에 공문으로 서신을 보내 우리 순례단을 기다리고 있다. 동구릉의 건원릉은 조선의 제1대 태조 (이성계 1335-1403)의 릉으로서 고려의 뛰어난 무장 이였던 이성계는 1392년 왕위에 올라 6년 2개월의 재임기간 동안 조선 왕조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건원릉은 1408년 9월9일(조선 3대왕 태종 8년)에 조성됐다.

주차장에서 내려 한참을 멋진 노송들과 갈잎나무들의 낙엽을 밟으며 널찍하고 웅장한 왕릉을 향하여 길게 난 오솔길을 걸어간다. 건원릉은 단릉으로 병풍석을 두르고 있다. 태조의 행적을 기록한 신도비가 있으며 팔각 장명등 소전대등은 고려의 능과는 다른 모양들이다. 봉분 위에는 잔디가 아닌 억새풀이 덮혀 있는데 고향을 그리워하는 태조를 위해 고향 함흥에서 가져온 흙과 억새풀을 덮은 때문으로 전한다.

일반 릉원에서는 사초지의 잔디를 수시로 벌초하지만 건원릉 봉분 사초는 잔디가 아닌 억새풀로 일년에 한번만 벌초를 한다. 억새풀은 아무 때나 자르면 죽어버리는 성질이 있어 추석을 전후해서 벌초를 하지 않고 가을이 지나도 그대로 두었다가 겨울이 지나고 한식이 되어서야 한차례 벌초를 하는 것이다. 건원릉이란 이름도 조선왕조 왕릉이 42기(북한2기)가 있는데 건원릉을 제외하고 전부 능 이름이 한 글자로 되어 있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해설가의 해설이 끝나자 각 지부별로 나눠 기념사진을 찍었다. 광주 전남 50년사에 실린다며 잘 나오게 해달라고 아양을 떠는 어른들의 모습이 천진스럽다. 다른 8개 릉은 순례를 미루고 잘 가꾸어진 능원의 오솔길을 걷던 중 각 파종회의 종현들의 역사를 모아서 편집을 한 광주 전남 50년 발전사의 출간에 대한 기대감이 문득 스친다. 순례단들은 세상사 돌아가는 이야기로 즐거운 담소를 나누며 버스로 향한다.

마지막 행선지 헌릉은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위치한 조선 3대 임금인 태종(1367-1422)과 왕비 원경왕후 민씨의 릉이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의 하여가로 유명한 이방원의 릉이다. 원경황후(1365-1420)는 여흥부원군 민제의 딸로 태종이 집권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나 태종이 왕권을 잡은 뒤부터 처가인 민씨 일가를 견제하는 통에 둘 사이에 불화가 끓이지 않았다.

능제는 태조의 능인 건원릉 형식에 따라 조영한 동원 쌍봉릉으로 조선초기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봉분의 병풍석에는 와형운문 속에 수관인신을 조각하였고 아래 부분에는 영지를 윗부분에는 영저를 좌측에는 영탁을 새겼다. 둘째 조선왕조 왕릉의 신도비는 건원릉과 헌릉에만 보인다. 셋째는 유교사상에 따라 불교적인 제도를 폐지하고 왕과 왕비의 능을 나란히 배치한 쌍분으로 조영하였고 망주석을 제외한 모든 석물을 각 2쌍씩 배치하였다.

조선왕릉을 돌아보며 잘 보존된 왕릉에 대한 감탄과 함께 한편으론 차가운 겨울바람을 온 몸으로 맞았을 수많은 민초들의 눈시울이 아른거려 온다. 조선의 왕들이 좀 더 잘하고 좀 더 베풀고, 좀 더 잘 참아서 백성과 신하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왕릉 해설사들 보다 더 진지하게 해설을 하는 문화 홍보이사국장의 설명을 들으며 수원화성은 다음에 다시 순례를 하자는 도지부장(이달우)의 말에 따라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500년 왕조의 조선왕릉 순례길에 우리는 어떤 흔적을 남기며 갈 것인가. 달리는 차량 안에서 살아온 날이 눈에 스쳐 지나가며 가슴 한 켠이 아려온다. 1박 2일을 함께한 순례단들은 다음에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각자의 갈 곳을 찾아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