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 장군 동상앞에 선 순례객들

사단 법인 전주 리씨 대동 종약원 광주, 전남 도지원(지회장 리달우) 주관으로 올해 6월에 세계 유네스코가 선정한 조선왕릉 유적지 순례에 도지부 부위원장(이항만)의 연락을 받아 참가 단원이 되는 행운을 얻었다.

11월 16일~17일까지 1박 2일 간의 순례를 이끄는 이화회 도지부는 여러 큰 행사를 주관하는 단체이다. 빼곡한 일정에 마음 단단히 무장을 하고 대인동의 도지부 앞에 도착을 한다. 관광버스 3대가 미리 히터를 틀어놓고 순례 일행을 따뜻하게 기다리고 있다. 리항만 부회장은 그 특유의 카리스마로 차량의 인원 배치를 하느라 부산하다. 마당발에 입담이 구수한 사람이다. 2호차에 좌석이 있다며 어서 오르란다. 차에 오르자 시군 도지부의 지회장들이 원근에서 새벽 일찍 출발해 도착한 열성들이 감탄스럽다.

버스는 빛고을 시내를 미끄러지듯 도심을 가로질러 빠져 나간다. 여행은 언제나 새로움의 출발로 기대감에 마음은 부풀어 오른다. 마음만은 더 젊어지는 것 같은데 감성은 무디어 오는 것은 어쩌랴. 든든한 젊은 리명준(미주개발(주) 대표이사) 조직이사와 자매님이 2호 차량의 도우미다.

차량은 도심을 벗어나 비아 톨게이트와 장성재를 단숨에 지나쳐 새로 난 고창 나들목으로 진입해 서남해안 도로를 내 달린다. 김제 만경평야의 넓은 들녘을 보고 있자니 마음과 속이 풀려 한잔 두잔 돌린 술에 취기가 오르자 앉은 순서로 자기소개를 하잔다. 돌림노래를 하면서 지루함을 달래잔다.

관광버스를 타면 조용히 갈 수가 없을까 하는 마음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얼마나 위험한 장난인가. 세계 여행지 어디들 가도 고속으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떠들고 뛰고 노는 나라는 오직 한국이다. 고속도로는 창가에 날려 보낸 스쳐간 인생처럼 지난날들을 떠올리듯 스쳐만 간다.

어느덧 인천 연안부두로 진입하자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시내를 통과하니 좌석에 앉아 조용히 가잔다. 월요일 날은 고궁과 박물관이 휴관이라 조선 왕릉 유적지 순례는 화요일인 내일 한다는 설명이다. 연안부두에는 전국에서 찾아든 관광버스가 도로변에 줄지어 서있다. 기사들이 차를 어느 곳에 주차할지 힘겨워 하는 모습이다.

초겨울의 바닷바람이 차가운 얼굴을 스친다. 1호차 기사장이 예약해 둔 식당으로 들어서자 생선찌개 냄새가 코를 찌른다. 4명이 한상에 앉아 왁자하니 식사를 하지만 아무래도 남도 음식에 비하면 모자란 듯한 감을 지울 수 없어 다들 씁쓸한 눈치들이다.

점심 식사를 마친 일행들은 먼저 나가며 자판기 커피를 마신다. 자판기 커피가 이미 대중화 되었다지만 어디 숭늉 맛만 하겠는가. 버스에 오르자 새로 개통한 인천 대교가 아득히 이어져 있다. 인천국제공항과 송도 국제 신도시를 연결하는 인천대교는 2005년 12월 영국의 건설 전문지〈컨스트럭션 뉴스〉에서 경이로운 세계 10대 건설의 하나로 선정할 만큼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총 길이만도 해상다리와 연결도로를 합하여 21,270m에 달해, 이를 품고 있는 인천이 세계적인 국제 항구로 발전하여 국익에 큰 도움이 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해 본다.

어느덧 버스는 인천대교를 지나 실미도로 들어가는 배에 커다란 몸뚱이를 올려놓는다. 실미도는 인천 중구 무의동에 위치한 섬으로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20km떨어진 사람이 살지 않는 작은 섬이다. 영화《실미도》가 크게 흥행에 성공하면서 관광지로 개발돼 바지락구이집과 횟집, 방가로와 모텔들이 여기 저기 들어서 왠지 이국적인 정취를 풍기고 있었다.

과거의 아픔을 잊어버리기나 한 것처럼 실미도의 앞 바다는 보석처럼 반짝이며 말이 없고 순례객들은 반짝거리는 바다를 보며 연방 카메라셔터를 누르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일정상 더 지체할 수 없어 아픔의 섬 실미도를 뒤로하고 인천상륙 작전으로 유명한 월미도로 향한다.

버스에서 내리자 중국풍의 거리가 나온다. 중국의 청도와 인천이 자매결연을 하여 중국에서 가져와 설립한 등용문이 웅장하게 서 있다. 정말 석공예술이 감탄스럽다. 바로 뒤편에 서예의 대가 왕희지의 석상이 있고 길을 중심으로 좌측은 중국풍, 우측은 일본풍의 건물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인천상륙작전의 주인공 맥아더 장군의 동상과 공원을 훑어보고 나니 시간은 벌써 어둠으로 꽉 차 오른다.

순례객들은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 할 연안부두 근처의 작은 호텔에 삼삼오오 여장을 푼 후 주린 배를 채워 줄 광주식당으로 향한다. 낮에 식사보다 생선탕이라서 좀 낳은 편이다. 그 많은 인원들이 입영 훈련소 같이 한꺼번에 와르르 들어가도 척척 자리를 잡아 일사분란하게 식사가 준비되어 나온다. 뜨거운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그제서야 세상이 제대로 보이는걸 보면 역시 사람은 먹어야 사는가 보다.

그러나 여행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람들과 어울려 춤과 노래에 빠져보는 것 아니겠는가. 일행들은 노래방과 나이트클럽으로 나뉘어 음주가무를 즐기기 위해 떠나고 멀리서 온 순례객들이 머물다 간 자리에는 그들이 가져온 남도의 흔적만이 남아 맴돈다. 나이트클럽도 모자라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까지 온통 춤판을 벌였던 일행들은 호텔에 도착해 4인의 룸메이트들과 함께 내일 일정을 주고받다 곤한 잠을 청한다.

다음날 새벽 일찌감치 아침을 먹고 서삼릉을 향해 출발한 한 일행들은 눈앞에 다가오는 조선 왕족의 무덤에 와~하고 탄성을 연발한다. 조선 왕족의 무덤은 모두 119기에 이르며, 이 가운데 陵이 42개이고 園이 13개이며 墓가 64기이다. 이 무덤들은 주인의 신분에 따라 그 명칭을 달리하는데, 능은 왕과 왕비의 무덤을 말하며 원은 왕세자와 왕세자비 또는 왕의 사친의 무덤을, 그 외 왕족의 무덤은 일반인의 무덤처럼 묘라고 한다.

42기의 능 가운데 북한 개성에 있는 제능과 후릉을 제외한 40기의 능이 남한에 있다. 500년이 넘는 한 왕조의 무덤이 이처럼 온전하게 보존된 것은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며 관광과 문화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이다.

조선왕릉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재 권고안이 지난 6월 22~23일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리는 제 33차 유네스코 세계 유산위원회에서 최종 결정 되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현재 145개국 878건이 지정돼 있으며 이중 문화유산은 679건, 자연유산이 174건, 복합유산이 25건이다. 최다 등재국으로는 이탈리아로 모두 43건이고, 스페인 40건 중국이 37건으로 뒤를 잇고 있다.

조선 왕릉이 세계 유산으로 등재 권고를 받은 것은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환경이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왕릉의 숲을 더욱 잘 보존하고 왕릉 구역의 환경을 해치는 인공 구조물을 이전하는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지난해 9월 유네스코로부터 현장실사를 받을 때 실산단의 권고 사항도 왕릉의 자연환경 보존이었고 왕릉주변에 보호구역(Buffefer Zone)을 설정하고 개발 압력을 막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실사단은 서울 공릉동 태릉 부근의 태릉선수촌과 사격장, 석관동 의릉 부근의 예술종합학교에 대해 이전을 권고했었다. 재실과 수라간 같은 시설물 복원도 시급하다. 서울 삼성동 선릉을 방문한 실사단이 삼성동 일대의 땅값을 묻고는 깜짝 놀란 일화가 있다. 도심 한가운데 광범한 녹지를 가진 왕릉이 수백 년간 보존되고 있는 것을 보고 한국의 문화재 보호 의지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의 일반 공개를 권장하고 있다며 현재 공개되지 않은 왕릉을 추가 공개할 때 관광객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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