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염색 명인 정관채(무형 문화재 115호) 전수관에서 일행들과 함께

2천년의 역사가 남겨 놓은 문화유산이 살아있고 ‘전라도’라는 명칭의 유래가 된 유서 깊은 고장 나주. 깊어가는 가을, 눈으로 맛 보는 즐거움과 사람냄새가 그립던 차에 (재)내셔널 트러스트 문화유산 기금 주관으로 열린 나주 답사기행에 참가하는 행운을 얻었다.

전라남도의 중서부에 위치한 나주는 동으로는 화순군이 맞닿아 있고 서로는 함평군과 무안군, 남으로는 영암군이 연접해 있으며 광주광역시에 나주의 북쪽 끝자락이 자리 잡고 있다. 영산강은 나주 지역을 남북으로 양분하고 있으며, 산 정상에 서면 호남의 곡창인 나주평야가 그림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11월 14일 나들이의 설레움에 취해보는 것도 잠시, 바다에는 태풍경고를 알리며 느닷없이 날씨가 급강하를 한다. 행사의 출발지는 나주 다도의 풍산리 도래마을. 참가자들이 남녀노소로 다양하다.

도래 마을 옛집은 나주 풍산리에 위치에 있으며 국가지정 문화재인 홍기응 가옥(중요민속자료 제151호), 홍기헌 가옥(중요 민속자료 제165호)과 이웃하여 있다. 1936년 지어진 집으로 쓰임에 따라 공간 활용을 자유롭게 하여 근대 한옥의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어 보전가치가 크다. 2006년 내셔널트러스트(재)가 시민들의 기부에 힘입어 매입해 시민문화유산으로 지정, 보전하였고 「무량수전 배흘림에 기대서서」로 유명한 혜곡 최순우의 옛집에 이어 제2호로 지정된 옛집이다.

참가자들을 태운 버스는 이번 여행의 첫 번째 답사지인 불회사로 향한다. 불회사는 백제의 불교 전파 경위를 밝히는데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찰이다. 백제의 침류왕 384년에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세웠다고 전해지며 불교를 최초로 전파한 고구려 소수림왕보다 12년이 늦지만 백제 최초의 사찰이라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불회사에서 뭐니뭐니 해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법당안의 비로자나불이다. 종이로 만든 지불(紙佛)로서 그 희귀성과 함께 가치가 뛰어나 2001년 보물 제 1310호 지정되었단다.

불회사 석장승

버스는 지방도로를 따라서 세지면을 지나 면소재인 반남면으로 향한다. 반남고분 주차장에는 바람이 세찬데도 이미 많은 버스와 체험학습의 남녀 학생들이 많다. 문화 유산 해설가의 핸드 마이크가 소리에 날려 모기 소리 같다. 강풍과 추위에 다들 떨고 있는 걸 알았는지 해설가는 신속한 이동을 재촉 하는 센스를 발휘한다.

반남고분군은 영산강 지류의 삼포강을 중심으로 고대문화의 꽃을 피운 곳으로 자미산을 가운데 두고 약 40여기의 고분이 대안리 고분군(사적76호), 신촌리 고분군(사적77호), 덕산리 고분군(사적78호) 등 3개 고분군으로 나뉘어 분포해 있다. 일제 강점기 처음으로 발굴되어 세상에 알려진 이 고분군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대형옹관과 함께 찬란한 금동관, 금동신발 , 봉황문 환두대도 등 권력자의 위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덕산리 고분은 신촌리 고분과 이어지는 낮은 구릉에 위친한다. 자미산의 반남 고분군 가운데 가장 늦은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연대는 5세기 중엽-후반으로 판단되어지고 있다.

복암리 고분군(사적404호)은 영산강을 끼고 펼쳐진 평야지대에 자리 잡은 대형고분이다. 이 일대는 원래 고분 7기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4기만 남아있다. 복암리 고분에서는 권력자의 위상을 보여주는 금동신발과 은재관식, 마구류, 그리고 금. 은으로 장식한 규두 대도, 음장삼 엽환두 대도 등 화려한 보검이 다량 출토 되었다. 이러한 유물들은 복암리 고분에 묻힌 피장자가 과거 이 일대를 군림하던 지배세력 이였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느덧 오전의 시간이 훌쩍 지나 나주시내 고전적인 분위기가 썩 어울리는 사랑방 한정식당에서 요기를 하게 됐는데 일행들은 추위에 떨었던 몸을 녹이며 목을 타고 내려가는 음식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남은 오후일정을 진행 도우미들의 안내를 받으며 조선 초기에 쌓았다가 최근 복원된 남고문과 동점문을 둘러보았다.

금성관은 나주목의 객사 건물로서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1963년에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홍무 계축년에 건립 되었다고 한다. 홍무 계축년은 1373년으로 고려 공민왕 때이다. 이 금성관도 일제 강점기에 군청으로 쓰여 졌기 때문에 많은 훼손이 되어 1976년에 완전 해체 복원을 하였다.

나주 읍성 내에는 나주 목사 내아 관문인 정수루 나주향교 등이 인근에 있다. 금성관 정문인 망화루는 일제시대에 없어졌으나 최근 복원 되어 목재들이 새로 단장된 것이다. 목사관 정문을 나서자 바로 옆에 위치한 큰 북이 찬란한 색깔로 일행을 반기는 장수루가 나온다. 이 문은 나주의 관아를 통과하던 관문으로 1603년에 목사 우복룡이 건립했다는 설과 1754년 목사 민백남이 건립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나주향교로 고풍스럽게 발길을 옮겨 가며 바람에 날리는 단풍잎 은행나무 잎들이 우수수 바람에 날린다. 나주향교로 향하는 길을 따라 무수한 이 지역의 인재들이 원근에서 과거시험을 보기위해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나주 향교는 다른 곳과 보기 드문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충복사유허비다. 나주향교 노복이던 김애남이 임진란 때 대성전의 위패를 목숨걸고 지켜 나라에서 충복사를 지어 주었는데 불타 없어지고 유허비만 남아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박성건의 금성별곡 시비다. 1480년 이곳 나주 향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생도 10여명이 한꺼번에 생원 진사시험에 급제하는 경사가 있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경기체가인 금성별곡을 지어 남겼다고 하는데 후대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시비를 세운 것이다.

차에 올라 금성산 아래 한 고개 구비를 감아 돌아 나주반장 김춘식 공방에 도착한다. 나주소반 장인 김춘식(무형문화재 14호) 공방에서는 나주반의 역사와 제작과정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소중한 밥상머리 교육이 예절들이 마냥 그리워진다. 오늘날 신세대 청소년들의 가정교육 부재 현상을 볼 때 마다 밥상머리 교육의 절심함으로 인해 마음 아리다.

쪽 염색 체험관에서…

공방을 뒤로 하고 오늘 일정의 마지막 종착지인 쪽염색 명인 정관채(무형 문화재 115호) 전수관으로 발 걸음을 재촉 한다. 아담한 마을 앞에 들어서자 전수관에서는 전통 자연염색의 이해를 돕는 영상강의를 듣고 손수건에 쪽물을 들이는 염색체험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천연염색 문화관은 다시면 회정리 영산강변에 위치하며 지하 1층 지상2층(연면적 3100평방미터) 규모로 천염염색 관련 시설로는 국내 최대 규모를 갖춘 곳이다.

나주에는 영산강 삼 백리 역사의 흐름이 계속되는 어머니 젖줄이 있어서 선사인 들은 이 유역에서 등 붙일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그분들의 빛나는 예지를 오늘 천년의 가을 목사골을 걸으며 이곳이 마한의 독특한 문화를 간직한 물미지국이라는 것을 느꼈다.

나주호의 긴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가벼이 여장을 꾸리고 푸른 솔바람이 이끄는 곳으로 발걸음 옮기어 짙푸른 강변 샛노란 유채꽃이 날아갈듯 한 나그네는 비단고을 나주에서 그 풍경에 취하고 색에 취하고 훈훈한 정에 취해 일상에 찌든 심신을 훌훌 털어버리고 가련다. 구수하게 때로는 얼큰하게 똑 쏘며 입안에 감기는 손맛으로 대를 잇는 맛 집들은 빼어난 인심까지 더해져 여행의 깊은 맛에 취하게 한다.

(재)내셔널 트러스트 문화유산 기금이 주관한 목사골 행사를 마치며 버스 기사와 문화 해설사 도우미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배꽃 피는 봄날 환한 모습들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다. 참가자들은 우리 문화의 홍보도우미가 되어 얼과 혼을 되살려 후손에 물려주는 안내자의 역할을 다하기를 다짐하면서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아로새긴 낙엽을 세어가듯이 헤어진다.

가을길을 걸으며…

도래마을 옛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