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서구 광천동 금호갤러리 전시관에서 서구문화원장(김종 시인. 화가)의 ‘허공.그 눈부신 상차림’ 열 번째 작품전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시와 사람’의 대표 강경호 시인을 만났다. 화순문학 가을 단풍야유회가 11월 8일 일요일에 있으니 문인들끼리 서로 인사도 나눌 겸 참석하자는 것이다. 화순에 살면서 문인들끼리 얼굴을 익히고 좋은 시상도 떠올리며 가을을 만끽하자는 마음에서 동참하기로 했다.

행사 당일 아침 화순교육청 앞에 25인승의 승합버스가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당의 교우 지산문학회원도 보인다. 문화원에서 인사를 나눈 회장이 먼저 인사를 한다. 을씨년스런 가을비는 추적추적 차장을 때리며 출발지를 향하여 읍내를 가로 질러 떠난다.

가로수 잎 물든 단풍들, 하필이면 이런 좋은날 비란 말인가? 계획대로 진행을 하겠다며 회장은 총무와 답사 일정을 이야기 한다. 제1안과 2안을 내놓으며 회원들의 동의를 구한다. 순천만을 거쳐 벌교로 온단다. 회장은 행사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차 뒤편 앉은 회원들이 준비도 없이 출발을 하느냐며 투덜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버스는 화순을 벗어나 주암을 거쳐 곡성 목사동을 지나 섬진강 줄기를 따라 가을비에 젖은 도로를 달린다. 첫 번째 행선지인 금환낙지라는 운조루(구례 토지면 오지리 중요 민속자료 제8호)에 닿았다. 운조루는 조선 영조 52년(1776년) 삼수부사를 지낸 류이주가 풍수지리설에 의하여 남한의 3대 명당인 터에 지은 집이다. ㅡ자형은 하인들의 방이며 T자형은 사랑방 ㄷ자형은 안채와 대문간의 사랑채로 연이어져 있고 안채의 뒷마당으로 돌아서도 이어져 있다.

이웃들이 끼니를 잇기 어려울때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한 ‘운조루’의 목독

안채에서 사랑채로 나오는 문간에 '누구나 쌀뒤주를 열 수 있다'는 뜻인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귀가 보인다. 이는 쌀 두가마니 반을 목독에다 쌀을 채우고 가난한 이웃사람이 끼니를 이어갈 수 없을 때 마개를 돌려 빼다가 밥을 짓도록 선덕을 베풀었던 오불리스 노불리즈의 미덕이었다. 우리사회에서 사라져 버린 가장 아름다운 정신세계의 가치를 운조루에서 느낀 것이다.

버스는 운조루를 떠나 시루봉을 쳐다보며 달린다. 산수유 붉은빛 열매가 비를 맞아 무거워 축 늘어져 있다. 가을비에 흠뻑 젖은 버스는 섬진강의 2차선 좁은 도로을 따라 임진왜란 때 천연의 요새지인 이곳을 막지 못한 수군들과 병사들이 도망쳐 버리자 지방의병들이 막아 싸우던 칠충의사의 충혼각과 산성을 스치며 지나간다.

연곡사에 도착하자 어메! 단풍 붉었네! 찬사의 일갈이다. 일주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잔다. 일행들은 마냥 주변의 산세와 깊은 계곡 곱게 물든 단풍들에 도취되어 대웅전으로 향한다. 연곡사 3층 석탑(보물 제151호)을 돌아보며 문화유산이 제대로 보전이 안 되어 있어 안타까움에 젖는다.

탑이란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봉안한 불교의 상징적인 석탑이자 보물인 것이다. 삼층석탑 뒤편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오랜만에 시골 정취를 느끼는 한가한 산사 기분이다. 석탑을 뒤로 하고 대웅전에 참배를 하고나서 연곡사의 얼굴인 연곡사 동부도(국보 제153호)를 찾았다.

좌측의 부도(보물 제151호)는 비신만 뭉뚱 남아있다. 화순 이양의 쌍봉사의 철감선사(국보 제24호)의 부도와 쌍벽을 이룬 부도다.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로 문화재청장을 지낸 류홍준 교수의 글이 생각이 난다. 쌍봉사의 부도탑이 훨씬 아름답고 선명하며 예술성이 뛰어난 감각적으로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남한에서 최고의 부도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단풍철을 맞아 등산객과 가족 단위의 나들이 인파로 차들이 혼잡하게 밀려 든다. 꾸불거리는 도로를 따라 곱게 물들어 가는 단풍을 마음껏 눈에 담아보고 싶어 진다. 우리네 인생도 저기쯤 보다 더 지났을까 자연과 인생의 이치를 되 뇌여 본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자 다시 삼거리 검문소에서 하동 쪽으로 방향을 돌려 섬진강 줄기를 따라서 한참을 가자니 웅장한 지리산 준령을 감싸 안은 토지 마을의 큰 돌비석이 나온다. 마을로 들어서자 토지마을 이야기가 있는 생태마을의 넓은 평사리 들녘 물길은 하얀 모래를 낳고 넓은 백사장을 만들어 송림 숲을 이룬 모습이 장관이다. 물길과 꽃길의 고장 하동 땅이다.

화개 장터 십리 벚꽃 물살을 가르며 가는 배 뱃전에 서 있는 여인의 모습이 한가득 다가 온다. 하얀 눅노 겹저고리의 옷고름이 나부끼고 치맛자락이 강바람에 나부낀다. 고귀하고 위엄있는 모습에 그는 진정 아름다웠지만 그러나 외로움이 담긴 모습이었다. 소설속의 서희가 떠오른다. 버스 주차장에서 내리자 가랑비가 내린다. 박경리의 토지문학비가 커다랗게 서있다.

마을은 온통 토지문학의 메카로 탈바꿈 되어 있었다. 서희 아가씨가 쓰던 방이며 한옥들이 전통의 멋을 풍기며 줄지어 서있다. 체험하는 어린 학생들이 많이 눈에 띈다. 농산물 전시장이 더욱 크게 들어섰고 여기저기 세트장 길목이 보인다. 마지막 서희가 걷던 대숲 길을 걸으며 토지 문학관에 들어섰다. 일행들은 자주 와본 곳이라 그런지 대충 슬렁슬렁 본듯 만듯이 훑고 지나간다.

점심 시간을 훌쩍 지난 탓에 시장기가 기승을 부린다. 하동읍내 해물나라에서 점심과 함께 하동 막걸리를 곁들이니 한잔 술들에 얼큰하여 일어 설 줄을 모른다. 일정을 재촉하여 섬진강 다리를 넘으니 다시 전라도 광양 땅이다.

순천만 갈대밭은 우천관계로 취소하고 곧바로 벌교의 태백산맥 문학관으로 방향을 잡았으나 비가 내려 시야를 가리자 버스는 두어 번이나 문학관을 찾느라 실갱이를 하였다. 조정래의 태백산 문학관 앞에는 《문학은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고 적어져 있다. 개관할 때 와보고는 처음 찾는 길이다.

문학관은 3층 높이의 현대적인 건물로 통일을 향한 염원의 설계로 건축되었다. 분단 상황의 뿌리를 밝혀내고 싶었다는 조정래 작가. 세인들은 그를 분단민족 해방공간을 밝힌 햇불이라고 했다. 소설 태백산맥은 4년간의 답사와 준비를 거쳐 10년 간의 집필 끝에 탄생시킨 작가 조정래의 걸작품이자 일약 그를 유명하게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무려 4백50만부나 돌파했으니 말이다.

작가 조정래의 삶과 그의 문학을 뒤로 한 채 버스는 낙안으로 화순 쪽을 향해서 주룩주룩 내리는 빗길을 미끌어 지듯 좁은 도로를 따라 달렸다. 화순에 도착하여 만연사 동구리 당산나무 위 식당에서 갈치 정식으로 문학기행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만날 날을 위해 건배를 하였다. 오늘 저녁은 ‘시와 사람’의 강 시인이 쏜다고 일어서면서 말을 하자 좋아들 한다.

회장이 제일 좋아 한다. 윗 층에서 차를 한잔씩 사겠다, 노래방을 2차로 가자는 등 흥을 돋구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다며 서로 간 손을 잡고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추적거리는 빗길에 아쉬움을 남기며 단풍잎을 가슴에 품고 다들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