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리경재 선생

만연사 가는 길, 노랗게 물든 동구리의 가로수들 아래로 은행나무 잎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결실의 계절이 정점에 온 듯 시인의 마음은 무척이나 바쁘다. 제자들을 향한 올바른 가르침의 열정을 펴오다 정년으로 교단을 떠난 리경재 선생. 신춘문학상으로 등단하여 문학 활동을 하는 시인이자 교육자인 그는 오늘도 만연산 문필봉 아래 은거하며 글을 쓰고 시를 쓰며 인생을 읊는다.

조부모(학송 리도경)와 외종 증조부(변상우)에게 주역을 익히고 세상사의 이치와 만물의 순리를 일깨워 가고 있는 그는 요즘 들어서는 그동안 교육현장에서 느꼈던 이 시대의 공교육과 사교육의 어려운 현실을 담아 수필 원고를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다. 깊어 가는 가을과 함께 풍류 속에 몸을 담그고 스스로를 한량이라고 말하며 큰 웃음 한 번 웃는 리경재 선생의 삶은 우리들로 하여금 그의 방문을 열어보게 만드는 마력과 같은 것이 있다.

화순에 둥지를 튼 지가 오래된 것 같은데요?
어언 15년이 훌쩍 지나갔어요. 산수의 아늑함에 젖고, 만연산의 품에 정한하게 살면서 한 세월을 보내고 있어요.

교육자, 시인, 신앙인으로서 활동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아는 데요. 작년에 시집을 한권 내셨지요?
문협을 통해 창작 시를 발표했어요. 창작이란 그리 쉬운 것은 아니지요. 교육자로 미션스쿨에서 35년 생활이 몸에 배인 것도 있고. 문인이다 보니까 세상을 심미적으로 보면서 자연과 인간의 삶에 많은 애착을 담아 보려고 노력을 하지요.

화순의 역사 문화를 발굴하여 신문칼럼을 발표하고 있는데 화순을 잘 조명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지요?
문화재는 우리의 뿌리고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지요. 과거를 존중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며 후손들에게 물려줄 값진 문화유산의 전통계승이라고 생각해요.

명문고를 나와 서울로 유학해 법대를 다녔는데 교육자로 방향전환을 한 어떤 연유가 있었나요?
한국전쟁과 여·순사건 당시 어머님의 고모들 고모부들이 모두 부르조아로 몰려 큰 환난들을 당했어요. 그런데 어머님 외가댁들은 교육 명문가인 보성 택촌 안씨 집안으로 교육계에 계신 외삼촌들만은 목숨을 부지했었지요. 이런 이유로 저의 모친은 사범대학, 교육대학을 적극 권유하셨고 그 때문에 외교관이나 해군 장교 등과 같은 꿈들을 접을 수밖에 없었지요.

집안 가득 책장에 법학서는 별로 없고 교육학, 문학, 사상집, 시집이 많이 보이네요,
조부님(학송 리도경)께서 한시(漢詩)를 잘 하셨어요. 산양(보성)시문회장(12년), 조양시문회장 등을 오래 동안 역임 하셨어요. 언제나 새벽이면 시를 읊으시며 석계제 제각에서 시회를 여시고 호남백일장의 체점관도 하셨지요. 그런 조부님 밑에서 이백. 도연명, 당송 8대가 등을 배우며 자란 어린 날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아요.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서은 문병란(화순 도곡 연화리) 교수의 현대 문학 강의를 들으면서 시에 눈을 뜨게 되었는데, 당시 문병란 선생님은 저의 담임이셨고 오늘의 저를 시인으로 추천하여 등단을 시킨 분이기도 하지요.

시인들의 선서 같은 것도 있나요?
한국 시인협회(사) 회장 김종해 시인이 선언문을 발표 했지요.
［시인들이여, 절실하지 않고, 원하지 않거든 쓰지 말라. 목마르지 않고, 주리지 않으면 구하지 말라. 온 세상이 권력의 전횡에 눌려 핍박 받을 지라도 그대의 칼날 같은 저항과 충언을 숨기지 말라. 민주와 자유가 유린당하고, 한 시대와 사회가 말문을 잃어버릴지라도 시인이여, 그대는 어둠을 거쳐서 한 시대의 새벽이 다시 오는 진리를 깨우치게 하라.］ 현대시 100주년 및 제19회 시의 날 기념행사 날에 선포한 시인의 선서입니다.

시인들을 가장 적절한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요?
독일의 천재시인 ‘하이데거’는 “세상에서 가장 죄 없는 일이 시를 짓는 일이고, 가장 죄 없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다” 라고 말을 하였지요. 또한 “시인은 죄 많은 중생들에게 그 존재 자체가 구원이다”라고 영국의 ‘워드워즈’가 말을 했어요. 사람들의 메마른 가슴에 풍금 소리 같은 연주를 하는 사람을 시인이라고 봐야겠지요.

한 평생을 교육자이자 시인, 신앙인으로 살아 왔는데 교단에서는 어떤 철학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나요?
조선중기 교육자인 ‘양성지’의 “인재는 나라의 그릇이요, 학교는 그 그릇을 구워내는 도가니요, 스승은 그 그릇을 정교하게 빗어내는 도공(陶工)이다.”라는 말과 “일년의 농사를 잘못 지으면 내년에 다시 지을 수 있으나, 청소년 시절의 공부 농사는 때를 놓치면 다시는 지을 수 없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교육을 했어요.

교단에서의 생활에 드는 후회라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더 남에게 베풀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더 참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좀 더 행복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더 적극적으로 가르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스러움이 항상 남아 있어요. 스스로 교만하지 않고, 스스로 비굴하지 않고, 스스로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짓도 하지 않는 ‘四不頌’을 언제나 마음에 담고 살았지만요.

교육계의 후학들과 많은 제자들에게 들려 줄 말이 있다면?
강릉의 선교장의 주인 ‘리내번’이라는 분이 이런 말을 했어요. “인생의 최고의 행복은 돈도 가져 보고, 권세도 가져 보았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주는 일은 다름 아닌 인간들끼리의 사는 이야기다.” 라고 했어요. 사람 사는 세상에 인간미가 넘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며 이상 사회의 건설에 한걸음 다가가는 것이라고 봐요.

취미 생활로 아코디언과 기타를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젊은 시절 계림동 학원에서 기타를 약 6개월 정도 배웠어요. 그런데 한동안 손을 놨더니 잘 안되는 게 사실이에요. 아코디언은 정년 후의 무료함을 달래고자 한 1년 8개월 정도 배웠는데 진전이 없어 쉬었다가, 아코디언 황제 보광스님을 만나게 되어 차근차근 다시 시작을 하고 있지요.

화순군민신문의 독자들의 궁금증이 이젠 많이 풀렸을 걸로 생각이 듭니다.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지역사회를 위하여 더 좋은 글을 많이 써 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