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록(40) 화가

사군자와 문인화를 거쳐 인체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아내고 성화(聖畵)를 통해 종교와 예술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는 화순출신 작가 오창록. 장맛비가 기승을 부리던 7월 중순, 호남대 부근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오창록 조형연구소)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의 첫 느낌은 견고하다였다. 건네는 악수로 반가움을 대신하는 작가와 고전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샹송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부드러운듯 하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화실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사군자와 문인화를 버리고 인물화를 택했다
화순 남면 출신인 작가는 중1때부터 사군자를 배우기 시작 해 고교시절에는 금봉 박행보 선생으로부터 문인화를 사사받으며 한국화의 기본기를 닦아나가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정 형편도 어려웠지만 한국화단에 큰 획을 그은 고 오지호 화백의 집안 출신이라는 이력이 그림을 배우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도제식교육은 그의 왕성한 그림에의 열정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어서 결국 시(詩, 서(書), 화(畵)가 조화된 문인화 대신 인체의 미를 화폭에 담아내는 인물화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다혈질이고 직선적인 성격인 탓에 정적인 문인화 보다는 눈앞에서 살아 숨 쉬고 아름다운 곡선의 흐름을 보여주는 인물화가 대중과의 소통의 창구로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다.

“제 인물화에는 주로 여인들이 등장합니다. 여체는 일단 아름답잖아요. 그렇다고 일류 모델급의 여자들을 그리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평범한 여체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함 이야말로 아름다움 그 이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순수미에 매화나 대나무, 문창살 등 한국적 서정성을 갖고 있는 소재들을 가미해 작품을 만드는 것이 제 인물화의 특징입니다.”

성화(聖畵) - 새로운 시도로 신앙을 표현하다
천주교 신자인 작가는 비단 인물화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소신을 그림으로 풀어내는 성화(聖畵)를 통해 예술의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천주교 수사인 형님의 권유로 종교화를 시작하게 된 작가는 2007년 서울 명동에서 '빛을 찾아 나선 순례'를 주제로 개인전을 열기도 해 한국화가의 범주를 벗어나 더 자유롭고 넓은 예술세계를 그려나가고 있다.

“제 성화(聖畵)의 특징은 액자의 틀마저도 작품의 일부로 포함시킨 점입니다. 종교는 서양에서 건너 온 것이기 때문에 한국적인 면이 부족한 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한국의 옛 가구나 문 등에서 소재를 가져와 액자의 틀로 사용 해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액자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예술가는 액자 안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컨셉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림의 영역이 결정되거든요. 그 컨셉은 마음에서 연출되는 것입니다. 액자에 맞는 그림이 있고 그렇지 않는 그림이 있겠지만 자신의 그림을 액자에만 담아두겠다는 고집은 버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을 보라 151*67㎝ 장지에 석분(오브제) 2007. 장르 - 성화

29세의 나이에 추천작가가 되다
작가 오창록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전남도전에 출품한 작품이 대상, 우수상 등 4년 내리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추천작가에 등재되는 기쁨을 맛보았다. 그의 나이 29세 때의 일이다. 시쳇말로 공모전을 다이렉트로 졸업한 작가는 그 후 전국에서 열리는 각종 미술전에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실력 있는 예술가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제가 사군자와 문인화를 공부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인물화를 수묵 담채화 기법으로 그렸습니다. 보통 한국화 아니면 서양화 둘 중 하나를 그리는데 반해 저는 수묵인물화를 통해 현대적 한국화를 시도했었습니다. 아마 그런 시도가 각종 공모전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것 같아요.”

“그러나 공모전 시기를 지나보니 진짜 내 작품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내 자신에 대한 자각도 하지 못한 채 너무 일찍부터 그림을 배운 것 같아 후회도 들었었죠. 예술가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그걸 소화시켜 배출해야 합니다. 어렸을 적부터 받은 고정화된 교육이 나만의 색을 찾는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던 것 같아요.”

2007년作 ‘흔적’. 미디어아트(사진, 포토샵, 조명)

그래서 작가는 지금까지의 것 들을 다 털어내고 진짜 자신만의 그림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 나갔고 보다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기 위해 인도와 스리랑카 등 해외를 돌며 그동안 쌓였던 파편들을 하나씩 비워내기 시작했다. 갇혀 있던 세상에서 벗어난다는 것. 그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은 그러나 그를 한층 더 작가답게 만들고, 자신만의 색을 찾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더 넓은 세상으로의 나래를 펴다
올해 서울 인사동에서의 개인전과 하니움 특별전이 준비돼 있는 작가는 2~3년 안에 서울로 진출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림을 팔아 생계를 이어 가는 전업작가로서 광주전남에서 오는 지역적 한계가 그로 하여금 더 큰 세상으로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가장으로서 갖는 현실적인 두려움이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였다.

“현재 호남대 강의와 화실을 운영하며 생활하고 있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가끔씩 벽화 등의 작업에 참여 하기도 하지만 꾸준히 있는 일은 아니거든요. 요즘 미술계는 상업화 위주로 돌아가고 있어 살아남기가 쉬운 일만은 아니지만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뚫는다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작가 오창록은 젊은 만큼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많다. 29세의 나이에 추천작가가 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언제까지나 과거의 만족만을 안고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작품 세계는 시냇물 흐르듯 변해가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오늘도 관념을 탈피해 자유로운 생각과 새로운 시도로 세상과 부딪혀 나가고 있다.


▶화순 남면 출생
▶호남대 미술과 졸업, 동대학원 졸업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전라남도 미술대전 대상, 우수상
▶광주광역시 미술대전 최우수상
▶전라남도 미술대전 초대작가
▶광주광역시 미술대전 초대작가
▶전국 한국화특장전 초대작가
▶아시아 미술대전 초대작가
▶2007 빛을 찾아 나선 순례-성화展 등 개인전 7회
▶현 한국미협, 그룹 소나무회, 창묵회 회원
▶현 호남대 평생교육원 출강
▶현 오창록조형연구소 운영

오창록조형연구소 : 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 966-3(2층)
전화 : 062_433_2256 / 핸드폰 : 011_9609_9069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作 ‘꽃잎’. 162*130㎝ 수묵담채 2001(왼쪽). 누드드로잉 2009(오른쪽)

흔적 162*130㎝ 한지에 혼합재료 2006

2005년 인도 스리랑카 등지를 여행하며 스케치한 작품

봄-흔적Ⅱ 130*24㎝ 한지에 혼합재료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