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채(42) 작가

역량 있는 젊은 미술인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자 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분관에서 개최하고 있는 손봉채 초대전에서 작가를 처음 봤을 때 받았던 느낌은 ‘너무 젊다’였다. 설치미술가로써 국내보다는 국외에 더 널리 알려진 유망한 작가가 겨우 40대 초반이라는 것이 충격으로 다가오는 건 그가 걸어온 길보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더 많은데도 이미 너무나 유명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설치미술가다
화순에서 나고 자란 손봉채 작가는 화순고를 거쳐 조선대 조소과와 뉴욕의 프랫 인스티튜트를 졸업했다. 조선대 재학시절 수석을 놓치지 않았던 그는 대학 4학년 무렵, 당시 알고 지내던 서울대 신현중 교수로부터 뉴욕으로의 유학 권유를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리라는 신 교수의 말은 그의 멈춰져 있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었다. 집안 형편상 무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세계 예술의 중심지 뉴욕에서 새로운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그의 열망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92년부터 시작된 4년 동안의 유학생활은 그의 인생을 새롭게 쓰는 전환점이자 출발점이 됐다. 작가는 그곳에서 세계의 큰 흐름 중에 하나였던 설치미술에 눈을 뜨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해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설치미술은 당시만 하더라도 광주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다뤄지지 않는 생소한 분야였다.

그의 공식적인 한국 첫 데뷔는 97년 제1회 신세계미술제 대상 작가로 선정되면서다. 그러나 설치미술가 손봉채가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전시회는 97광주비엔날레 ‘지구의 여백’ 본전시 (Main Exhibition) 『권력 ․ 金 』 전이었다.

“자전거는 앞으로 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많은 이웃들은 앞으로 가고 싶어도 나가지 못하고 주저앉거나 뒷걸음 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소시민들의 뒤로 밖에 갈 수 없는 아픈 현실을 거꾸로 가는 자전거를 통해 표현해 내고 싶었습니다.”

당시 손 작가는 거꾸로 가는 자전거라는 설치작품으로 각종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며, 세계적인 작가들과 어깨를 겨루는 청년작가로서 전무후무한 센세이션을 일으켰었다. 그의 나이 31살 때의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97년 제1회 신세계미술제 대상 수상과 같은 해 열린 비엔날레에서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까지 해결해 주지는 않았다. 97년을 최고의 해로 보낸 그였지만 작품제작에 들어가는 작업비를 감당할 길이 없었다. 작품에 대한 판로가 없었고 외부에서의 특별한 지원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고 싶은 작업을 멈출 수가 없어 여기 저기 돈을 빌려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다보니 4천만원 정도 빚을 졌는데 젊은 나로서는 감당할 수가 없었죠. 지금 같으면 화순군에라도 달려가 지원을 부탁했을 텐데 당시엔 그럴 힘도 없었습니다.”

작품 ‘경계_본질은 보이지 않는다’와 함께한 작가. 세계 각국의 풍경뒤에 가려진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작품화 했다. 포토페인팅/폴리카보네이트에 유화/2009

결국 그는 35세 무렵 작품 활동을 중단하고 돈을 벌기 위해 2년간의 공백기를 갖는다. 대학에서 강의도 해봤지만 돈이 안 돼 그만두고 철공소일과 배 바닥에 페인트칠 하는 일등을 전전하며 오직 돈을 버는 일에만 열중했다. 그가 꿈꾸어 왔던 것과는 거리가 먼 생활들이었지만 “그러나 그런 일들이 그를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만든 힘이였다”고 작가는 말한다.

해외에서 더 인정받는 작가 손봉채
작가는 2006 상하이 듀올런 미술관에서의 개인전과 2008 제3회 스페인 세비야 비엔날레 참여 등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보다 왕성한 활동을 하며 인정받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도쿄 갤러리 스트렌저(Gallery Strenger)에서 'New Face'라는 주제로 열린 초대기획전을 통해 침체돼 있는 지역 미술계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작가로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1년 중 6개월은 미국, 독일, 유럽 등 외국에서 전시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개인전 등을 통해 저의 작품에 대한 구매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창작활동에 필요한 경제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주고 있습니다.”

작가는 우리의 생활 속에 파고드는 작품이야 말로 진정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문화란 특수계층에게 주어지는 특권 같은 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꺼리’가 있는 화순으로…
작가는 화순이 갖고 있는 문화적 상품과 문화예술 전반에 관한 마인드가 부족한 것 같다며 아쉬움을 털어놨다. 관계 공무원들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작가들이 팀웍을 갖춘다면 돈 안들이고도 문화가 살아 숨쉬는 화순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쉼’_차나 한잔 할까요. 스테인리스 스틸/2009

“광주광역시의 경우 시화마을(시와 그림이 함께 하는 마을) 조성을 통해 도시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만들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화순은 문화적 자원을 많이 갖고 있는데도 이러한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작가는 시화마을 자문위원으로 있었던 경험을 예로 들며, 화순이 갖고 있는 화순만의 문화를 상품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는 곧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 등으로 요약되는 ‘꺼리’의 문화를 키우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모님께 감사한다. 그리고…
손봉채 작가에게는 나이에 맞지 않는 따뜻한 정서가 묻어 나온다. 바로 한국적 정서다. 각종 스포트라이트와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의 부모로부터 연유됐다. 작가가 뉴욕 유학시절, 화순광업소를 퇴직한 그의 아버지는 막노동 일을 하면서 매달 180~200만원에 이르는 학비와 생활비를 보내줬다. 여기에는 아파트 청소부와 야채노점상 등을 하며 아들 뒷바라지에 정성을 다한 어머니의 힘도 컸다.

“부모님은 추운 겨울날 동상에 걸리면서까지 저를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 고마움을 죽는 날까지 잊을 수는 없어요. 부디 오래오래 사시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무엇보다 1남3녀 중 하나 있는 아들이 예술의 길을 걷겠다고 했을 때 흔쾌히 승낙해준 부모님이 너무 감사하다고 말하는 그는 “저도 아이가 있는 부모지만 그런 상황이 닥쳤을때 과연 그와 같은 용단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며 지금의 그를 있게 해준 부모님께 고마움을 전했다.

에필로그
제2회 광주비엔날레(1997)와 제5회 광주비엔날레(2004), 세비아 비엔날레(2008) 등의 단체전과 10여차례의 개인전을 한 손봉채 작가는 한천면의 농협 창고를 작업실 삼아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다. 생활의 리듬을 중요시하는 그의 작업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창작발전소에서 꿈을 키워가며, 앞으로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 작가를 능가하는 세계적인 작가가 돼 세계 일류미술관들을 상대로 순회전시를 성사시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다. 또한 젊은 후배들을 위한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디비디바비디부!’. 한마디로 생각하라, 그러면 이루어 진다입니다. 젊은 후배들이 꿈과 희망을 갖고 자신의 길을 찾는다면 모든 걸 이룰 수 있다고 봅니다. 어려움을 딛고 매진했을 때 저만치 앞서가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우리집에 무슨 일이 생겼어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왼쪽 위 빨간 깃털의 새)에 호들갑을 떠는 세계 각국을 닭을 이용해 표현했다.

‘바람의 소리’. 1200*450mm/2008. 여러장의 그림을 겹쳐 입체적으로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