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순(49) 명창

소리꾼과 고수 그리고 청중이 하나되는 판소리. 소리판에서 모두는 공연자가 되고 너름새 하나 발림 하나, 모두가 음악이 되고 춤이 된다. 득음의 경지를 향해 피를 토하는 수련을 겪고 명창의 반열에 올라선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 김향순 선생. (사)화순국악진흥회 이사장이자 전남도립국악단원이기도 한 그는 오늘도 외길 소리인생을 걸으며 판소리의 보급과 고향 화순을 알리는 일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소리하는 그 날까지 완창공연을 하고 싶다
봄기운이 완연하던 지난 3월 26일, 광주빛고을국악전수관 목요열린국악한마당에선 3시간 반 동안 진행된 김향순 명창의 수궁가 완창공연이 있었다. 97년 첫 수궁가 완창을 시작으로 흥보가와 심청가를 번갈아 가며 한 공연이 벌써 7번째를 맞았다.

“소리라는것이 안하면 잊어버려요. 수궁가, 흥보가, 심청가의 가락이 머릿속에 다 들어있는데 안잊어먹기 위해 틈만 나면 중얼거리며 외우고 있지요. 소리공부는 끝이 없어서 내 기량을 위해서라도 3년에 한번씩은 꾸준히 발표해 왔어요.”

이날 발표회는 그의 두 딸인 김민지(24, 아쟁)·명진(19, 대금) 씨가 시나위협주를 들려주어 관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 소리의 길이 힘들어 자신의 대에서 끊을려고 했었지만 피는 속일 수 없었는지 결국 두 딸들도 이 길을 걷게됐다는 것이 김 명창의 설명이었다.

소리에 대한 열정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화순이 고향인 김 명창은 집안 대대로 예술인의 피가 흐르는 예술가(藝術家)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춤과 소리와 연주 등을 접하게 되었다. 소리공부를 위해 14세 때부터 비포장길을 달리는 버스에 의지한 채 광주에 있는 학원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다녔다.

“예술이라는 것이 누가 억지로 시킨다고 되는건 아니라고봐요. 그 어린나이에도 무슨 열정이 있었는지 먼길을 오고가는 것이 하나도 힘들지가 않더란 말이에요.”

김 명창은 우리것에 흠뻑 빠져 국악 전분야를 정신없이 섭렵해 나가던 그 시절이야말로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힘이었다고 말한다. 그의 그러한 노력은 1979년 전국판소리 경연대회 학생부 최우수상을 시작으로 1990년 남원춘향제 판소리전국대회 일반부 최우수상, 1999년 광주국악대제전 명창부 대통령상 수상 등 각종 대회를 휩쓸며 소리꾼으로서 인정받는 결실을 맺게 했다.

“나는 원래 고향을 밝히길 꺼려했어요. 그런데 대통령상을 받고 기자들이 고향을 묻는데 그때 처음으로 화순이 고향이라고 말했지요. 어렸을적 탄광촌 부근에서 자랐던 일이 어린마음에 부끄러웠었나봐요.”

소리의 길은 너무나 힘든 길이었다
김 명창은 77년 공대일 선생의 심청가 사사를 시작으로 당대 유명한 한애순, 조통달 선생으로부터 흥보가와 수궁가를 사사 받았다. 서편제의 전통을 잇고 있는 그는 득음에 이르기 위해 산속에 들어가 한달 씩 소리공부를 하곤 했다. 폭포소리를 누르기 위해 배를 움켜쥐고 밑바닥부터 끌어올려 내지르는 발성 수련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한달정도 있다 나오면 거의 초죽음되기 일쑤였다고 그는 당시를 회상한다.

“어찌나 힘들던지 밥조차 못먹을 정도였어요. 예전에 득음을 위해 인분을 먹었다는 얘기가 예사로 들리지 않았지요. 골병든다는것이 바로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그러나 외길 소리인생에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만약 이 길을 안 걸었다면 지금처럼 즐거움을 만끽하는 삶은 없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소리의 참 맛을 알게 해준 세월은 관객에게 연륜에 걸맞는 감동을 줘야한다는 부담을 덜어주고도 남게 했다.

김향순 명창이 지난 3월 26일 광주빛고을국악전수관에서 수궁가 완창을 하고 있다

화순을 예향의 고장으로 알리고 싶다
김 명창은 지난 2003년부터 고향인 화순지역의 자부심을 심기 위해 매년 ‘화순전국국악대전’을 개최하고 있다. 작년까지 총 6회의 대회를 치러냈지만 처음 2년 동안은 사재를 털어 자금을 마련하는 등 금전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그후 화순군으로부터 일정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전국규모의 대회를 치러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화순국악진흥회를 설립하며 가졌던 꿈을 포기할 수 없어 지금까지 사명감하나로 버텨오고 있다.

“화순을 예향의 고장으로 알리고자 했던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그러나 타 지역에 비해 관심이 많이 부족한게 사실이에요. 변변한 공연공간도 없어 이번 수궁가 완창 공연도 광주에서 해야만 했었지요.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에요.”

김 명창은 화순의 예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군립국악원이나 그에 버금가는 단체를 만들어 예술분야가 꽃피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다고 말한다. 또한 화순전국국악대전의 대상이 현재의 문화관광부장관상에서 대통령상으로 승격돼 대회의 격을 높이고 화순을 알리는 홍보대사가 되길 바라는 바람도 잊지않았다.

에필로그
김향순 명창은 현재 (사)화순국악진흥회를 통해 전국에서 열리는 축제나 예술이 낙후된 지역을 찾아 공연활동을 펴는 등 예술전령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전남도립국악단원이기도 한 그는 단원들과 매주 토요일 목포문화센터에서 열리는 토요국악공연 무대에도 나서판소리와 뺑파전 등의 공연도 펼치고 있다.

기존 판소리에 시나위 협주나 무용을 곁들여 형식의 파괴를 꿈꾸는 시도는 좀 더 관객에게 가까이 다가가 우리 소리를 대중화시키고자 하는 그 만의 의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예술이 애인이자 자식이자 남편이라고 생각하며 살고있다는 그의 말에서 소리를 사랑하고 예술을 품에 안은 한 국악인의 혼이 느껴졌다.

마당쇠전, 광주국악대전 대통령상 수상, 세종문화회관 초청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