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읍 이서면 야사리 '야사마을'

“하믄, 뭐, 돈이 그냥 벌어지간디. 손을 놀래야 돈을 벌제.”
“일 없이 혼자 있어봐. 그것 같이 환장할 일이 없어.”

‘뽕엿’으로 유명한 이서면 야사마을은 마을 부녀회가 주축이 돼 겨울 한철 엿을 고아 전국으로 판매한다. 몇 년 전부터는 매스컴을 타면서 주문량이 많아 일손이 바쁘다. 농한기에 화투나 치고 있을 판인데 뽕엿으로 짭짤한 수익을 얻으니 엿을 고는 마을 아주머니들은 신이 난다.

엿은 날씨가 추울 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꼭두새벽부터 작업을 한다. 보통 새벽 2시부터 솥을 걸고 저어가면서 엿을 데린다. 그렇게 몇 시간씩 엿을 데리다 보면 날아 밝아온다. 고무줄처럼 쭉쭉 늘여 먹기 좋게 가위로 자르면 금방 딱딱하게 굳어지면서 한 입에 쏙 들어가는 엿이 되는데 입 안 가득 단기가 도는 게 제법이다.

엿을 팔아 생긴 수익금은 마을 공동으로 주민들을 위해 쓴다. 무엇보다 마을 회관에서 함께 자고 먹으면서 공동으로 일을 하다보니 사람 사는 맛이 솔솔 난다고 한다.

야사마을은 800년이 넘은 마을로 킬리만자로 산 같은 무등산을 뒤로하고 있는 전형적인 산골마을이다. 50여 호에 15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주민들의 마을자랑이 대단하다.

“저기 저 무등산 천왕봉에서 내린 산줄기가 마을 뒤쪽까지 뻗어왔어. 보이제? 저렇게 산 줄기들이 겹치면서 마을을 감싸고 있거든? 그 끝자리가 학교 자리여. 그렁께 이 야사는 인물이 많이 낳제.”

조선후기 대표적인 실학자였던 규남 하백원 선생의 태생지와 활동지가 야사마을이다. 규남 선생의 작품인 동국지도(東國地圖)는 고산자 김정희가 그린 대동여지도보다 무려 51년이나 앞선 것으로 밝혀지면서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래서 일까? 야사마을회관 벽에도 “西紀 1945年度 解放前 二西面 野沙里 全圖(서기 1945년도 해방전 이서면 야사리 전도)”라는 제목을 가진 지도가 걸려있다. 하장호씨가 1945년 해방 무렵의 야사마을을 그린 행정지도 격인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도가 아니라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마을 주민들의 집을 하나하나 표시해놨는데 그 정확성에 혀가 내둘린다. 지도 한 장에 야사마을의 역사가 그대로 담겨 있다. <그림2오른쪽>

지도를 통해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야사마을 짐대(솟대)가 마을 입구가 아닌 논 가운데 길가에 있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지금의 다리와는 다른 시멘트와 나무의 혼합된 형태의 다리 모양도 지도를 통해 복원 되고 있다.

면소재지도 아닌데 우체국이 있는 것도 야사마을의 자랑이다. 우체국은 주민들이 오전 10경이면 모여 따끈한 커피한잔 나누며 담소를 나누면서 하루일과를 시작하는 마을의 사랑방이다. 주민들은 우체국을 ‘야사다방’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체국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주민들의 발길이 오히려 좋단다. 자연스럽게 사람 사는 정을 느낄 수 있어서 반갑다고 한다.

“할머니들은 먹을 것이 있으면 직접 가져 올 정도로 인심이 좋아요.”

이곳에서 근무한지 5년 됐다는 영암 아가씨 유선영씨는 “야사의 인심이 최고”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옆집 마실가듯 우체국을 찾는다는 남임순 할머니도 야사다방의 단골손님이다. 수원에 사는 둘째아들에게 보낼 쌀이라며 손수레에 쌀 한 가마니를 싣고 들어온 할머니는 아들의 주소가 적힌 수첩을 직원에게 통채로 건넨다. 그만큼 우체국과 주민들의 관계는 돈독하다.

<그림3왼쪽>마을 회관에서는 동네어르신들의 흥겨운 노랫소리가 가득하다. 회관에 있는 노래방 기기에 부지런히 번호를 입력하는 이장님의 손길도 흥겹다.

“노래는 엔코를 넣어야 제맛이제잉?”
“초가삼간 집을 짓을 내 고향 정든 땅~~~~ ․․”

엔코를 높이고 노래를 부르는 동네어르신들의 모습에 어깨가 저절로 들썩여진다. 아마도 마을 주민들의 건강한 삶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글, 그림-심홍섭 화순군 문화재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