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사업에만 치중해 오던 농업협동조합이 농업인들에게 실질적으로 이익을 주는 경제사업 쪽으로 구조적인 체질 개선을 하게 됐다.
정부는 농협과 농민단체, 학계 등으로 구성된 농업개혁위원회가 제출한 의견을 바탕으로 마련한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을 29일 국무회의 의결로 확정했다.
이 농협법 개정안은 그동안 농민단체와 학계 등에서 주장해온 개선내용이 대폭 수용돼 있어 농협이 조합원인 농업인들을 위한 실질적인 경영체로 바뀌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 농협의 문제점
그동안 농협은 농업인에 대한 자금공급, 농자재 지원 등 긍정적인 역할을 해 왔지만 최근 농업환경변화에 적응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특히 농업인과 학계를 중심으로 농협이 금융사업에 치중하고, 유통·판매사업에는 소홀하다는 비판과 함께 농협개혁 요구가 지속돼 왔다.
농협중앙회는 작년 말 현재 예금 92조3669억원 규모의 은행, 국내 4위의 보험사, 8조원 규모의 유통회사 등의 지위를 동시에 갖고 있다.
외형상으로는 막강한 힘을 가진 조직이다. 여기에 전국 1335개 지역조합의 예수금을 합하면 전체 농협의 예금액이 2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회원조합의 상호금융업무와 무관하거나 경쟁관계인 자체 은행 업무에 농협중앙회의 조직·인력·자본이 집중돼 있다.
중앙회 인력 1만5000명 가운데 74%가 신용사업부문에 종사하고 있고, 자본금 5조원 중 경제사업 분야 자본금은 고작 5.4%에 불과해 농업인이 원하는 경제사업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특히 일반은행, 유통업체 등은 급격한 금융·유통시장 여건변화에 살아남기 위해 전문 CEO를 영입하거나 선진경영기법을 도입하는 등 자기혁신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농협의 경우는 중앙회는 물론 일선조합도 현재에 안주하면서 환경변화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노력도 없다는 지적이다.
대부분의 읍·면마다 있는 일선조합은 금융유통 업무를 하는 지역경제의 구심체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예수금이 500억원 미만인 지역농협이 57%에 달할 만큼 규모가 영세하고 비전문적인 경영 등으로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또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 선진국 협동조합은 전통적인 운동체적 협동조합 체계에서 벗어나 규모화·전문화·기업화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협동조합은 영세한 영농규모 등 열악한 여건 하에서 규모화·전문화 등 개혁의 정도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이번 농협법을 개정하게 된 배경이다.
■농협 개혁 어떻게 진행되나
농협중앙회는 절대적인 경영권을 보유한 회장 중심의 경영체제를 책임성이 강조되는 대표이사 중심의 전문경영체로 전환한다.
일선조합은 자율적인 합병을 통해 규모화·전문화시키면서 경제사업을 활성화시킨다는 것이 이번 농협법 개정안의 주요 골자다.
농림부는 일선조합을 품목조합 중심체제로 전환할 수 있도록 품목조합연합회, 조합공동사업법인을 활성화하는 한편, 금년 말까지 '지역농협 중장기 합병지원계획'을 수립해 조합이 스스로 합병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인센티브를 마련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 정대근 농협중앙회장은 ""작년에도 30여개 조합이 통합됐다""며 ""책임경영체제가 도입되면 점진적으로 경제권 단위로 자율적인 통합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