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에서 이서 북면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노라면 만경창과 동복 수원지가 오른편 창밖에서 넘실거린다.
이 물을 따라 시선을 멀리하여 바라보면 웅장하면서 절승의 풍치를 이룬 강상단애가 있으니 바로 장항적벽 또는 보산적벽 이라고 하는 곳이다
이 장항적벽의 건너편에 자리잡은 마을이 보암리였는데 옛날에는 유마운의 딸 보안이 여기에 절을 짓고 보안사라 하여 마을이름이 보안리라 불렀고 뒤에 난산마을과 합하여 보산리라 하였고 오랜 세월과 함께 보암리가 되었다.
이 마을에는 유래 깊은 효자 정자근노미라는 정효자에 얽힌 전설과 함께 마을 사람들이 받들어 오는 제사가 있다.
정효자에 대한 문헌의 자세한 기록은 알 수 없고, 동복읍지에는 관향이나 출생년대 그리고 선조내력마저도 기록이 없으나 효행의 사실은 기록되어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미천한 천민출신이라고 말할 뿐이다.
정효자는 적벽의 건너 마을인 보암리에서 편모를 모시고 살았다.
정 소년은 홀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지극했다.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 물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이 적벽강에 나와보니 얼음이 꽁꽁 얼어 고기를 잡을 길이 없었다.
그러나 소년은 얼음을 깨고 물속을 들여다 보며 고기가 나타나기를 반나절이나 버티었다.
이 지성에 천심이 감동했음인지 한자 이상 되는 큰 잉어가 얼음위로 뛰어 올라와 그 고기를 어머니께 바쳐 병을 치료했다.
어느해 겨울이었는데 어머니는 다시
「복숭아가 먹고 싶다. 어디서 구할 수 없느냐 ? 」 하셨다.
소년은 그 날부터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 복숭아나무가 있다는 산골을 찾아 헤매어 보았으나 낙엽만 쌓여있는 텅 빈 산골짜기에서 복숭아 나무마저 식별하기 어려웠다.
이산 저산을 헤매다 날이 저물면 돌아오곤 하였는데 어머니는 더욱 복숭아만 간절히 원하는 것이었다.
며칠이 지나도 복숭아는 구할 길이 없어 어린 소년은 이 산골 저 산골을 울면서 헤매었다.
새소리마저 고요하고 물소리도 그쳐버린 한 겨울의 산골에 애절한 어린 소년의 울음소리가 골짜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설한이 찬 바람은 솔가지를 흔들며 어린 소년의 가슴을 차게 얼렸다.
그날 날이 저물도록 울며 헤매다가 지친 몸으로 돌아와 잠시 잠이 들었다.
아! 참으로 지성이면 감천이라 이날 밤 꿈에 하얀 노인이 나타나 복숭아 있는 곳을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이튿날 소년은 현몽했던 그곳을 찾아가 보았다.
과연 그 엄동에 복숭아 세 개가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소년은 서둘러 복숭아을 품에 안고 허둥지둥 바뿐 걸음으로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 바쳤더니 백약이 무효였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소년의 효심에 마을 사람들은 물론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였다.
그뒤 어느해 그의 어머니는 마을 앞 강가에 나갔다가 실족하여 불행히도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이 소년 정자근노미는
「어머니께서 이토록 억울하게 비명에 가신 것을 생각하면 이 모두 저의 잘못이니 무슨 면목으로 세상 사람들을 대하여 뒷날 어떻게 구천에 가서 어머님을 뵙겠는가?」
하고 탄식하며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 자리에서 투신하여 뒤따라 죽고 말았다.
죽은지 이틀이 지나자 이 두 모자는 두손을 잡고 강물위에 떠올라 마을 사람들은 속칭 배바위에서 탑동으로 넘어가는 1㎞지점 길목에 나란히 장사지내고 비를 세웠다.
그뒤 어느때인지는 알 수 없으나 동복현감이 적벽강에 와서 뱃놀이를 하고 놀다 말을 타고 이길을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말이 이 무덤 앞에 발을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무릎을 끓어버렸다.
현감도
「참으로 괴이한 일이로고.....」
이상하게 여겨 말에서 내려 사방을 살펴 보았다.
길가의 무덤을 발견한 현감은 수행하던 사령에게 물었다.
「저 무덤은 뉘 무덤이냐?」
「예. 다름이 아니오라 저 무덤은 이 아래 보암리에서 살다 물에 빠져 죽은 정자근노미의 효자묘입니다.」
현감은 즉시 무덤앞에 가 읍하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관원더러 말하기를
「명년부터는 제사를 지내 주도록 해라.」
하였다. 그러자 즉시 말발굽이 움직였다고 한다.
그후 오늘에까지 동복현감이 하사한 제답 2두락으로 매년 삼월 삼일이면 보암리 사람들과 함께 이서면장이 제주가 되어 제를 지낸다.
광주목사로 부임한 이서구가 적벽강을 다녀가다 이 정효자 묘를 지나게 되었다.
무심코 묘 옆을 지나다가 좌우를 살펴보더니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 나무가 여기에 서 있을까......?」
하며 감탄을 하는 것이었다.
「이토록 큰 효자가 여기에 있단 말이냐?」
그는 묘 앞에 당도하여 말위에서 읍으로 절하고 예를 갖추었다.
이 나무는 출천지대효자가 아니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나무 이름은 각계수, 속칭<애계나무>라고도 한다.
이 나무는 현재 강원도 철원과 화순의 두군데 밖에 없어 극히 희귀한 나무였다.
말발굽이 움직이지 않은 이적은 정효자의 효성스러은 영혼이 그 어머님께 제사를 바치지 못함을 원통히 여겨 동복현감에게 한을 풀어주도록 하기 위하여 나타난 이적이라고 뒷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고소대에서 탑동으로 넘어가는 옛길도 이젠 동복댐 푸른물이 넘실거리고 무성하던 애계수는 정효자의 애달픈 한과 더불어 만고의 사표로 넋을 기리는 듯 울창하였으나 몇 년전에 갑자기 죽어버리고 근처 작은 나무 하나가 다시 자라 잡목속에서 겨우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나 동복댐 수몰과 함께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