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에서 동면을 향하여 가노라면 장동역(壯洞驛) 과 함께 아담한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마을 뒷 산에는 며느리 고개와 승마봉, 그리고 시루봉이 있는데 여기에도 전설 한토막이 얽혀 있다.
옛날 그 마을에 맹씨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맹장자(孟壯者) 가 몹시 인색한 구두쇠 영감이어서 인근 사람들은 모두 맹장자를 따뜻하게 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놀부처럼 지극히 인색하여 가난한 이웃에게도 인정이나 선심을 베풀어 아껴 줄 아량은 없고 다만 시기 질투심만 뱃속에 가득하여 항상 이웃이 잘 되는 것을 전혀 보지 못하는 구두쇠였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하늘이 복을 주어 부자로서 나름대로 쟁쟁한 세도를 부려 범 없는 골에 삵괭이가 왕노릇하는 격으로 작은 고을에서 제법 행세를 하며 살고 있었다.
이웃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맹장자의 심술이나 인색한 욕심은 지극히 미워하나 가난이 원수인지라 울며 겨자먹기로 하는 수 없이 그 집에 가서 품을 팔아 하루하루 연명을 하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맹장자에게 깨닫고 배우도록 천상에서 보내셨는지 요조숙녀로서 지극히 어질고 효심이 있는 며느리를 맞았다.
며느리는 시아버님의 짓궂은 행실을 걱정한 나머지 시간만 있으면 따뜻하고 공손한 말씨로 아버지께 여쭈었다.
그러나 맹장자는 며느리 말에는 아랑곳 없이 갖은 욕심과 심술을 고칠 줄을 몰랐다.
소문은 원근 마을에까지 알려져 때로는 맹장자를 찾아보는 사람까지 있었다.
하루는 어느 도승 한 분이 고을을 지나다 맹장자의 나쁜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그는 곧장 큰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과연 맹씨는 얼굴에 독기가 있고 눈초리가 싸늘한데다 팔자걸음을 걸어가며 종들에게 호통치는 거동이 듣는 말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스님은 대문에 들어서 몇걸음 걷다가 짐짓 허리를 굽혔다.
「 여보시오. 주인어른, 저는 탁발나온 몸으로 배가 몹시 주려 밥 한 그릇 부탁합니다. 」
맹장자는 힐끗 스님을 건너다 본 뒤 다시 고개를 돌렸다.
「 때 아닌 밥이 무슨 밥이오? 저녁밥 뒤에나 찾아 오시오.」
한말로 냉정히 축객을 한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물끄러미 서있는 스님을 보다 못해 안부엌에서 일하던 며느리가 물 한 그릇을 손에 들고 나와 스님께 올렸다.
「 대사님 죄송합니다. 이 물이라도 드십시요. 원래 천품이 그러하신 분으로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읍니다. 용서 하십시요. 밖에 나가 계시면 밥을 싸가지고 우리집 아이편에 전하여 드리겠읍니다. 」
스님은 밖으로 나가 기다렸다.
과연 부엌 심부름하는 아이가 보자기에 정성 담긴 찬과 밥을 싸가지고 나왔다.
도승은 밥을 모두 먹고 심부름하는 아이에게 조용히 일렀다.
「 밥을 보내주신 너의 마나님에게 필히 전하여 줄 것이 있으니 아무도 모르게 잠깐만 너와 같이 나오도록 하여라 」
잠시후 며느리는 아무도 모르게 아이와 함께 밖에 나왔다.
「 어찌 그러십니까? 」
「 은혜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잠깐만 저를 따라오십시요.」
며느리와 아이는 스님을 따라 산을 올라갔다.
스님은 산기슭에 서서 한참동안 진언을 외우며 단정히 눈을 감고 서서 합장배례를 하자 갑자기 이변이 일어났다.
삽시간에 바닷물이 저건너 천운산 부근에서 조수처럼 파도를 치며 점점 산기슭에까지 오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며느리가 깜짝 놀라 스님께 울면서 간청하였다.
「 이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우리집과 우리 시아버님을 어떻게 하려 하십니까? 우리 가족을 구하여 주십시요.」
그러나 스님은 의연히 서서 만경창파의 바다만 바라보았다.
「 그런 어질지 못한 심상으로 복락을 누리는 것은 천도에 어긋난 일입니다. 큰 죄를 지은 자는 살아서 받아야 하고 죽어서는 다시 지옥을 가야하는 법입니다. 당신은 마음이 어질어 구해주는 것이오.」
며느리는 한참동안 무릎을 치고 울었다.
만경창파는 노도로 변하여 무서운 파도와 폭풍으로 몰아쳤다.
그녀가 살던 좋은 집도 풍파에 휩쓸려 흔적조차 없고 온 가족들은 모두 물위에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승은 못들은 척 하고 지팡이로 맹장자의 가족들만 한사람씩 구하여 준 뒤 맹장자는 구해주지 않고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효심이 지극한 며느리는 도승의 뒤를 따라가며 시아버지를 구해달라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애원하였으나 못들은 척 산을 올라가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주저앉아 방성 통곡을 했다.
도승은 며느리의 간곡한 호소에도 아랑곳 없이 그 산의 상봉에까지 올라가 하늘을 우러러 보며 합장배례하고 주문을 암송하였다.
이윽고 하늘에서 오색이 영롱한 구름과 함께 용천마 한 필이 내려와 도승을 등에 싣고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맹장자와 기와집은 흔적조차 없어져버리고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어버린 가족들은 이웃사람들의 도움으로 인근에 다시 움막집을 마련하여 여러사람들이 주는 식량으로 겨우 연명을 하며 살게 되었다.
그러나 효심이 지극한 며느리는 아버님의 생각 때문에 항상 괴로왔다.
마침내 그녀는 시아버지의 왕생극락을 위하여 백일기도를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날마다 시루에 떡을 빚어 상을 올려놓고 모든 정성을 다하여 천도의 기도를 올렸다.
그러던 어느날 밤 꿈속에서 지난번 만났던 도승이 또 다시 나타났다.
「 너의 정성이 지극하여 신명이 감응한 바 어려운 생활에 어떻게 떡을 다하겠느냐? 앞으로는 물 한그릇으로 기도를 드려라.」
다음날 다시 물그릇을 받들고 기도처를 찾아가니 괴이하게도 산의 석벽이 모두 시루떡처럼 층층으로 된 바위로 변하여 바위사이가 흙이 끼어 있었다.
그뒤 맹장자는 며느리의 정성으로 왕생정토하였고 산의 형상이 시루떡처럼 생겼다고 하여 시루봉이라 불리었다.
또한 용천마를 타고 승천한 산을 승마봉이라 하며 장동에서 언도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며느리고개라 하는데 마을이름은 맹장자가 살았다고 하여 장자동이라 하였으나 다시 약칭하여 오늘날 장동이 되었다 한다.
그러나 마을의 유래는 늙은 노파 몇분의 귀에만 어렴풋이 전할뿐 아는 이가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