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려하고 웅장한 백아산의 서남쪽 기슭에 용촌(龍村) 이라고 하는 마을이 있다.
옛 이름을 용시암이라고도 하는데 지금도 늙은이들과 부녀층에서는 그렇게 통용되고 있다.
마을의 뒷골짜기는 백아산의 깊숙한 수원으로부터 흘러 내리면서 한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기암과 더불어 장관의 폭포를 이루고 백석청탄의 맑은 물이 항상 흘러 유유한 산촌의 풍경을 자랑하고 있다.
옛날 이 골짜기 아담한 곳에 용선암(龍仙庵) 이 있었다고 한다.
용선암이 있는 골짜기라고 하여 용선암골이 와전되어 용시남이 되었다.
그리고 이 골짜기에 큰 못이 있었는데 용이 살다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용골이라 하였다고 하는 말도 전한다.
용선암에는 송씨 총각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이 마을에 송씨 총각이 늙은 부모님을 모시고 가난하게 살았다.
송씨는 천성이 온후하고 효심이 지극하여 날마다 남의 일을 돌보아 주면서 얻은 품삯으로 어버이를 봉양함에 온 성의를 다했다.
엄동설한에도 백아산을 오르내리면서 나무를 부지런히 하여 늙은 부모님이 따뜻한 겨울을 보내게 하고 나무를 팔아 양식과 고기를 구하여 부모를 받들었다.
백아산을 오르내릴 때는 항상 용선암에 들려 나무도 하여주고 노승이 탁발하여 올라오는 짐꾸러미나 신도들의 시주짐과 절간의 대소사를 골고루 보살펴 주었으며 노승을 부모님 대하듯 하였다.
용선암의 노승도 송씨를 친척이나 수족처럼 아껴주었으니 날이 갈수록 정과 의는 더욱 깊어만 갔다.
어느 해 늙으신 아버지께서 시름시름 노병으로 신음하니 효자인 송씨는 팔방의 명의를 찾아 약을 바쳤고 산해진미를 구하여 구환에 정성을 다하였으나 송효자의 정성에도 아랑곳없이 병은 점점 더하여 마침내 돌아가시고 말았다.
마을사람들은 송효자의 정성에 감동하여 모두 찾아와 치상을 적극 도와 주었다.
그러나 장사지낼 묘자리가 없어 걱정을 하고 있던중 용선암의 노승이 소식을 듣고 내려와 효자 송씨 총각을 위문하고 나서 친히 절 부근 길가에 묘자리를 정하여 장사지내게 하였다.
그뒤 장례를 마치고 삼우가 지난 어느날, 용선암의 노스님께서 조용히 불러 절을 찾아 오도록 하였다.
송씨총각은 용선암을 찾아와 합장 배례하고 공손히 있는데 스님께서 간곡히 일렀다.
「 너의 아버지 묘자리가 부자가 될 명혈로써 너의 재산이 은수저 서말이 되면 반드시 타지방으로 이사를 하여야 한다. 내 말을 명심하여라. 」
그후 송씨 총각은 어느 현숙한 규수에게 늦장가를 들어 알뜰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데 과연 스님의 예언과 같이 집안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이른 봄에 암닭이 병아리 이십마리를 낳아 집안 뜰에 돌아다니면서 솔갱이가 병아리를 물고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병아리를 다른 곳에서 물고 들어와 이 병아리에 던져 주고 돌아갔다.
그후 병아리는 이십마리가 한달후에는 사십마리, 오십마리가 되었다.
밭에 곡식을 심으면 들고양이가 밤마다 지켜 쥐가 곡식을 먹지 못하게 하였고 논에 심은 벼도 도깨비들이 아무도 모르게 밤마다 마른 논에 물을 데어 주었으며 꿀벌들이 모두 날아와 뒷뜰 나무가지에 매달려 너울거리면 쓸어 담아 벌집을 만들어 주어 어언 수십통이 되었으니 오곡백과는 물론 가금육축이 모두 송씨집만 들어오면 새끼를 낳아 가산은 일가월증으로 풍요하게 되어 갑자기 고을의 거부가 되었다.
송씨는 말년에 천석의 부호가 되어 도주궁궐이 부럽지 않도록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었다.
노비들을 거느리고 태평년월속에서 말년을 보내는데 은수저 서말이 되었음에도 까맣게 잊고 만년의 복락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런데 용선암의 노승의 말과 같이 송장자(宋壯者)의 가산은 이제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다.
모든 가축은 밤마다 삵괭이가 끌어갔다.
큰 짐승은 호랑이가 물어 죽였고, 밤마다 도깨비가 불놀이를 하여 집에 화재가 그치지 않았으며 집안에 괴변만 잇달아 마침내 가산이 추풍낙엽처럼 탕진되고 말았다.
이제야 노스님의 유언이 생각나 뼈아프게 후회를 하였으나 모두 사후약방문되어 갑자기 가산이 탕진된 송장자는 하는 수 없이 걸인의 신세를 면치못하고 비참하게도 어디론지 유리타향이 되고 말았다 한다.
지금은 그 후예마저 알 수 없고 송장자의 전설만이 희미하게 전하고 있다.
그리고 인연깊은 용선암도 그뒤 스님과 더불어 어느 때인지 알 수 없으나 모두 쓰러지고 쓸쓸히 옛 절터만 전하여 마을 이름으로 용선암이라고 그저 전할뿐이다.
눈을 감으면 아련히 목탁소리 귀곁에서 들릴 듯하며 향내음이 코끝을 스칠듯 하지만 이젠 물소리만 졸졸 흘러 무성한 나무숲 사이를 지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