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아산의 낙맥인 약수리 앞 산 정상에 동굴이 있는데 그 동굴에 들어서서 다시 좌측으로 들어가면 원통형의 샘에 이른다.
이 샘물이 만병통치의 약수로 유명하여 동네이름까지 약수리(藥水里)가 되었다.
자세한 기록은 없고 들리는 말에 의하면 고려 공민왕때 라고 하는데 이 마을에 맹씨 한분이 살고 있었다 한다.
맹씨는 바른 쪽 팔과 손이 불구여서 마을사람들이 모두 불쌍히 여겼다.
맹씨는 앞을 못보는 늙은 어머니를 모시로 살았는데 생활마져 지극히 가난하여 생계가 어려웠고 손 또한 불구로 살아갈 길이 더욱 막연하였다.
그러나 맹씨는 효심이 지극하여 아침과 저녁으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구걸을 하여 눈 못보는 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하였다.
맹씨가 십오세 되던 때 일이었다.
봄날 긴긴 하루를 보내면서 허기진 뱃속을 어느 부잣집 잔치의 고기와 술로써 채우고 집에 돌아오자 식곤증으로 잠이 들었다.
맹씨는 단잠에 깊이 취하여 있는데 꿈속에 어떤 백발노인이 나타나 이르기를
「 나는 이 고을 산신으로 너의 효심이 지극하여 밝은 길을 열어주겠노라.」
하면서 번쩍이는 금방울 하나를 주었다.
맹씨는 꿈속에 공손히 두손으로 받았다.
이튿날 아침에 간 밤의 꿈을 노모께 말씀드렸더니 노모께서도
「 참 괴이한 일이다. 」
하셨다.
그날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 마을 집집을 돌아다니며 밥을 얻어 돌아와 노모와 함께 먹었다.
맹씨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뜰에 나와 봄볕에 솟아 오르는 파란 새싹의 움을 살펴보고 옛 친구나 만난듯 반가워하고 있는데 어디서 갑자기 낭랑하고 시원스러운 방울소리가 창공에서 들리는 것이었다.
목에 방울을 달고 있던 새 한마리가 맹씨집을 빙빙 몇바퀴 돌더니 잠시후에 마루에 앉았다.
새는 날아 갈 줄을 모르고 앉아 있어서 맹씨는 짐짓 새옆으로 가까이 갔으나 새는 여전히 앉아 있었다.
이상히 여기고 슬그머니 새를 안아보았다.
그러나 새는 놀라지도 않고 다정스럽게 안기었다.
맹씨는 그 새를 안고 자랑스러운 듯이 마을 사람들을 찾아가 어른들께 물어보았는데 마을 사람들은 모두 새를 보고 이 새는 참매로서 사냥을 할 수 있는 귀중한 보물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늘이 도와 큰 복을 주었다면서 모두들 기뻐하였다.
맹씨는 이날로부터 매를 잘 길들여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가까운 산과 들로 다니면서 토끼. 꿩등을 잡으려 다녔다.
새는 꿩이나 토끼를 보면 번개처럼 찾아 잡아내었다.
손이 불구인 맹씨에겐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매가 잡은 꿩과 토끼를 마을 사람들에게 팔아 가정살림을 유지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맹씨는 날마다 사냥을 하여 그 소득으로 생활을 하며 모자간에 점점 알뜰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매을 데리고 또 다시 앞산으로 사냥을 가게 되었다.
갑자기 장끼 한마리가 눈앞에서 뛰어 날았다.
손에 있던 매는 쏜살같이 날아가 꿩을 쫓았다.
꿩은 창공을 날다보니 뒤쫓아오는 매를 피할 길 없어 즉시 방향을 바꾸어 소나무 밑으로 기어 도망치는데 열기에 가득찬 매는 계속 꿩을 쫓았다.
그 순간 맹씨는 시선을 두리번거리다가 그만 매도 꿩도 모두 놓치고 말았다.
이 산골 저 산골 샅샅이 찾아 보았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절망에 빠져 힘없이 산을 내려오는 그에게 갑자기 어디선지 방울소리가 들려왔다.
깜짝놀라 그자리에서 숨을 죽이고 다시 귀를 기울려 자세히 들어보니 옆에 컴컴한 굴이 하나 보이는데 그속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맹씨는 서둘러 굴속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굴속에서 방울소리가 역력히 들리며 꿩소리까지 들렸다.
반가운 심정과 찾고 싶은 욕심에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속을 더듬어 방울소리를 따라 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맹씨는 불구의 팔과 몸은 물속으로 빠졌다.
그는 겨우 물속에서 다시 나와 허둥지둥 헤맨 끝에 매와 꿩을 찾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고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맹씨의 팔이 다음날부터 완전히 치유되어 건강한 팔이 되었으니 세상이 다 함께 울고 웃으며 감탄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마을사람들이 모두 찾아와 기뻐하며 두손을 맞잡고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하였다.
효심이 지극한 맹씨는 다음날 다시 산에 올라 더듬더듬 동굴숙 샘물을 찾았다.
그리고 그 샘물을 담아놓고 단정히 무릎을 꿇어 합장배례를 하면서 천지신명께 감격의 눈물과 함께 다시 애절한 호소의 기도를 올렸다.
「 불구된 이 몸을 고쳐주신 산신님께 눈물로 감사드리오나 안맹하신 우리 어머님 눈병만 구하여 주신다면 내 일 죽어도 한이 없겠읍니다.」
하면서 흐느껴 울었다.
쥐죽은듯 조용한 굴속에는 맹씨의 흐느낌뿐이었다.
한참동안이 지난 뒤 어디서인지 아늑히 말소리가 들려 왔다.
「 염려말고 어서 돌아가거라.」
맹씨는 깜짝놀라 울음을 멈추고 다시 들어보았다.
거듭 맹씨의 귀에 분명히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맹씨는 기뻐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항아리물을 등에 지고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 그간의 일을 말했다.
「 바로 이 물이 굴속의 샘물입니다. 」
어머니는 기뻐하면서
「 어디 물맛이나 좀 보자.」
그릇에 담긴물을 마셨다.
「 참, 물맛도 좋구나! 」
「 어머님, 세수나 좀 하여 보십시오. 」
맹씨는 어머님을 모시고 손수 세수를 시켜드렸다.
골고루 씻어 드리면서 눈을 자주 닦아 드렸다.
다음날부터 기적은 시작되었다.
「 얘야, 내 눈이 어제보다 밝아지면서 빛이 보일 것 같구나! 」
감격스러운 노모의 외침에 맹씨는 눈물을 흘리며 산신께 감사했다.
「 명철하신 산신님이시어! 무슨 인연으로 이처럼 큰복을 주시옵니까?」
그뒤 맹씨는 계속 동굴의 물을 항아리에 날라 어머니의 눈을 씻어 한달만에 광명천지를 보게 되었으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경이 감탄하여 서로 다투어 이 굴을 찾아와 기도를 드리고 샘물을 먹으며 아픈 상처를 씻었다.
샘을 찾아온 사람들은 즉시 신기한 효험이 있어 병이 나았다.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자 사해팔방에서 각양각색의 환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기 시작하여 명천 약수로 알려져 이름조차 약수터가 되었다.
그러나 그뒤 어느 때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심술 고약한 한사람 때문에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약수터에 찾아온 손님이 너무나 마을을 귀찮게 한다는 핑계로 부정한 개머리를 잘라 샘에 묻어버렸다는 것이다.
심술꾼은 그자리에서 즉사하고 그뒤부터는 약수도 영험이 적어졌다.
나병, 반신불수, 간질, 당창 등의 무서운 악질과 고질의 불치병을 치료해 주던 이 샘은 예나 이제나 다름 없이 맑은 물은 흐르는데 인적은 끊어져 쓸쓸하고 적적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