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천 면 소재지인 한계리에서 왼쪽 계곡으로 3㎞쯤 오르면 정리라는 마을이 있다.
정승동(政丞洞)과 그 입구 마을 결우리 를 합한 행정구역상 이름이다.
이 정리중 정승동은 현재 23호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지만 이조중엽에는 서슬이 퍼렇던 마을이다.
정승동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이 마을 뒷산이 명당으로 정승이 났고 일대가 묘를 섬기기 위한 사폐지로 지정됐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 명당은 능성 구씨 2대조인 평장사 민첨의 묘소다.
평장사란 고려시대 벼슬로 정이품인데 보통 정동이라고도 했다.
능성구씨의 시조 존유는 원래 능주 사람인지 중국 사람인지 확실치가 않다.
다만 그는 1224년 중국에서 건너와 능주에 자리잡은 주잠 신안주씨 시조의 사위로 고려조 검교장군 벼슬을 지냈다하나 그 묘마저 찾지 못하고 있다.
능성구씨등이 발복하여 행세를 한 것은 이조 초기로 정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위세를 떨쳤던 집안이다.
첫 인물이라 할 구치관(具致寬. 1406~ 1470) 은 세조를 도와 세조의 눈에 가시격이었던 김종서를 죽이는데 앞장 서는 등 공을 세워 영의정을 지냈다.
이후 그 가문에서는 5백 62명의 과거급제자를 냈고 이중 65%인 3백 63명이 무과에 급제했다.
그리고 왕후가 1명, 공주를 맞아들인 부마가 4명이나 되었으며 영의정급 2명, 종2품이상을 9명이나 냈다.
이처럼 큰 인물이 많이 난 것은 모두 2대조인 민첨의 묘소가 명당이기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이 묘는 국사봉에서 출발한 산맥이 12마디를 이루어 내려오다 멈춘 현침혈(縣針穴)로 사람에 따라 천여등공혈이라고도 하는데 호남 8대명당중 하나로 친다.
위치는 정승동 마을뒤 1㎞지점 산중턱으로 경사도가 70도에 이르는 가파른 곳에 있다.
하도 가파르기 때문에 그의 아들 인이 그곳에 그의 아버지를 장사 지내던 날 묘제를 지내려고 밥상을 놓았더니 밥그릇이 1백m 가량 산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버렸다고 한다.
인이 뛰어내려가 밥그릇이 머무른 자리에 이르러 보니 밥그릇 선 자리가 이상하게 사람이 판 흔적이 있는 터였으므로 그 땅을 파보았더니 산도둑들이 수백량의 돈을 감춰 놓은 자리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모두 묘자리가 명당이라 그 명기가 그처럼 즉발했더라는 전설로 인은 정오품인 판관벼슬을 했다.
이조 세조조에 민첨의 8대손인 구치관이 수양대군을 도와 좌익공신이 된 다음 성종때 영의정 이준을 제거해 좌리공신이 되었다.
연산조에 이르러 치관의 조카 수영과 치관의 증손자 현휘는 중종반정에 가담해 정국공신이 되고 구씨 집안에서 두 사람이 중종의 두 공주에게 장가들었다.
중종반정 후 117년 뒤에 일어난 인조반정에도 능성구씨들은 크게 공로를 세웠으니 그처럼 많은 무관을 배출했던 이 집안이 이조 초엽 어떤 역할을 주로 맡았던 가는 가히 헤아릴만 하다.
인조반정 때 공을 세운 구씨집안 인물은 구굉과 구인후, 구인기등 중종의 사위가 된 사안에게는 사맹이란 동생이 있었는데 사맹은 그의 딸을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에게 시집을 보냈었다.
그러나 직손이 아니라 이복형인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뒤 폭정을 일삼았으므로 무관 집안이었던 구씨들이 중심이 되어 반정을 일으키고 사맹의 외손자인 인조를 왕위에 올려 세웠던 것이다.
반정 후 정사공신이 된 구씨 인물을 인조 입장에서 인척을 가리자면 어머니의 오빠인 굉은 외삼촌이고 굉의 아들인 인후는 외사촌으로 인조가 자랄 때 궁성에서 공부하며 자란 두살 아래 동생이다.
또 인구는 외6촌형이 된다.
이 공으로 인조의 외삼촌인 굉은 형조판서를 세차례 공조판서를 네 차례나 역임했고 그의 아들이며 인조의 외사촌 동생인 인후는 공조판서를 했으며 인조의 외육촌형 인구는 병조판서를 거쳐 좌의정 벼슬을 했다.
뿐만 아니라 인조의 어머니는 죽은뒤에 인헌왕후라 추존했으며 능주는 왕후의 본관 고향이라해서 현이 목으로 승격되었고 정승동 일대가 구씨사폐지가 되었던 것이다.
정승동의 민첨 묘소는 중종반정을 일으켰을 때까지도 돌보는 이가 별로 없어 인근 사람들이 그 주위에 암장을 하는등 형편이 아니었으나 1547년 대사헌을 지낸 구수담이 전라도 관찰사가 되어 내려와 이곳을 찾아온 길에 묘소관리가 잘못된 것을 발견하고 이곳에 암장한 박영, 김숙곤등을 잡아 가두고 묘소일대를 정화했다.
그리고 묘소의 축대를 쌓아올렸는데 나주, 남평, 동복, 보성, 장흥고을에서 힘센 장정을 뽑아 백리밖에서 돌을 옮겨 축성을 하였으며 스님 한 사람을 잡아올려 생매장하였다는 말까지 전한다.
후일에 불길한 액을 면하기 위하여 먼저 지신에 바쳐 방액을 하자는 것이었으리라.
과연 그러한 영험인지 지금까지 그 축대가 무너진 일이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14세기를 전후하여 궁성 주위에서 세도가 당당하던 구씨들도 17세기후반 정조조에 접어들어 세도가 꺾이고 말았다.
당시 훈련대장으로 있던 구선준이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 사건에 관련했을 뿐아니라 정조의 조카인 담을 추대해 역모하려 했다는 혐의로 두 아들과 함께 복주당하자 구씨들 세도는 빛을 잃고 말았다.
지금 정승동에는 구씨 시조 30 ~ 35세손들이 살고 있는데 23호중 20호가 구씨고 나머지 3호는 그 외손들이다.
구씨들은 이 마을입구에 73년 영모제라는 제각을 짓고 시조 및 그 후손들 제사를 10월 15일부터 10일간 계속하고 있다.
능성구씨의 전국 분포는 15 만명내외며 선세의 유훈을 받아 지금도 절도 있는 예법으로 제사를 모시고 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