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면에서는 우리 화순의 자랑이요, 삼남에서 손꼽는 승지라고 할 수 있는 적벽이 있다.
이 적벽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옛부터 보산적벽과 물염적벽의 두 곳이 있다.
이 황어굴(黃魚屈)은 물염적벽에 있는 굴이다.
옛날 거창 신씨에 장보라고 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신씨는 만년의 주역에 심취되어 천지의 현모한 이치를 살피고 도통할 목적으로 물염적벽의 굴을 찾아갔다.
신씨부인은 장항리 먼길에서 매일 하루에 세번씩 밥을 지어 싸들고 남편의 뒷바라지를 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지극한 신씨부인의 시중은 변함이 없었다.
이렇게 받들기 몇년이 지난 어느날 밤, 하늘에서 오색구름을 타고 학처럼 깨끗하게 보이는 도인이 나타나 이르기를
「 네 아내의 정성이 그토록 지극하니 이 바위에서 매일 쌀이 나오도록 하여주고 내 시녀를 보내 매일밤이면 다음날 먹을 밥을 지어주도록 하겠노라.」
말한 뒤 홀연히 사라졌다.
그날 저녁밥을 먹고 밤이 깊었는데 하늘에서 은은한 풍악소리와 함께 무산의 서왕모(西王母) 가 강림하였던가.
절세의 미인이 내려와 공손히 인사하고 옆에 앉았는데 문득 바위틈에서 난 데 없는 쌀이 쏟아져 나와 있었다.
신씨는 기뻐 어찌할 줄을 몰랐다.
「 예, 제가 밥을 지어 드리겠읍니다. 」
선녀는 예쁜 목소리로 대답하고 그 쌀로써 밥을 지었다.
「 시간이 다 되었으니 가보겠읍니다. 」
밥을 다 지어놓은 선녀는 잠시후에 하늘로 사라졌다.
다음날도 역시 삼경이 가까운 시각에 다시 천상에서 풍악소리와 함께 어젯밤 선녀가 나타나 다시 공손히 인사를 하고 바위틈에서 쏟아져 나와 있는 쌀로써 밥을 지어주었다.
신통하게도 쌀은 한 사람이 하루 먹을 수 있는 식량으로 더 많이 나오지도 않고 더 적게 나오지도 않아 두사람은 나누어 먹을 수도 없는 식량이었다.
신씨는 쌀걱정 밥지을 걱정을 잊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하루는 친구 한 분이 찾아와 한담으로 놀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날이 저물어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어 할 수 없이 그곳에서 하룻밤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신씨는 저녁에 먹을 식량이 적어 마음이 불안하기만 했다.
그러나 쌀을 구할 길마저 막연한 그는 마음이 조급하다 못해 쌀이 나오는 바위틈을 한참 바라보다 젓가락으로 무의식중에 바위틈을 휘벼파 보았다.
그러나 바라던 쌀은 나오지 않고 바위틈에서 갑자기 붉은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깜짝 놀라 참회의 기도를 드렸으나 아랑곳없이 피는 그칠 줄 모르고 흘러 내렸다.
이윽고 소복담장을 한 여인이 다시 나타났으나 바위틈에서 나는 피를 보고 흔적없이 바람 따라 사라지고 말았다.
손님과 먹을 밥은 말할 것 없고 신씨조차 먹을 밥도 지을 수 없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마을로 내려 가 저녁 밥을 먹고 그 다음날부터 목욕재계를 하고 다시 참회의 기도를 정성껏 드렸으나 쌀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신씨는 정성을 게을리 하지 않고 일념정신으로 기도를 드리며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며 정진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밤, 자정 무렵 산새조차 잠들어 천지가 고요한 가운데 물소리만 유난히 맑을 때였다.
문득 사람의 발소리와 더불어 한 여인이 나타나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제가 급한 일로 옥과까지 가는 길인데 날이 저물어 하는 수 없이 길을 따라 여기까지 찾아 들었읍니다. 무례한 인사이나 하룻밤만 쉬어 가게 하여 주십시요. 다리가 아파 더 걸을 수가 없읍니다. 」
신씨는 한참동안 주저하고 있다가 깊은 밤중에 어떠한 변명으로도 피할 길 없어 하는 수 없이 허락을 하고 말았다. 」
여인은 피곤한 몸으로 자리에 눕자 곧 잠이 들었다.
신씨는 천사만념이 구름같이 일어나 향취 풍기는 여인의 몸매를 살펴보니 점점 정신이 흩어져 욕심과 더불어 음욕이 동하였다.
잠든 여인이 몸을 뒤척이자 앞가슴과 하체의 풍만한 모습이 열려 있는지라 돌부처 아닌 사람으로써 욕정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인을 껴안았다.
옥같이 곱고 부드러운 몸을 어루만지며 다리로 허리를 휘어감는 순간, 난 데 없는 호랑이가 산천을 뒤흔드는 소리로 으르렁거리며 신씨의 상투를 물고 뒤흔드는 것이 아닌가. 이에 대경질색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얼마동안이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으나 신씨가 꿈속에서 깨어난듯 눈을 떠보니 여인도 호랑이도 흔적조차 없고 광풍이 지나간듯 하였다.
그때 이미 신씨는 눈과 귀가 멀어버린 뒤였다.
이는 산신이 신씨의 공부와 정신력을 살펴보는 것으로 벌을 내린 것이라고 아직도 노인들은 믿고 있다.
신씨는 파계한 자신을 뼈 아프게 뉘우친 끝에 굴앞의 물속으로 뛰어들어 죽고 말았다.
사람들이 달려와 살펴보니 사람의 시체는 찾을 길 없고 푸른 물속에 황금빛 큰고기 하나가 꼬리를 치며 놀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신씨가 죽어서 황어가 되었다고 말하여 그곳에서 고기잡기를 꺼려하고 애석히 여겨 항상 보호해 주었다.
이 굴은 파계한 신씨가 죽어서 황어가 되었다하여 뒷사람들은 이 굴을 황어굴(黃魚屈)이라 부르고 있다.
높은 곳에서 퉁소를 불고 돌을 굴려 내리면 방아 찧는 소리처럼 들리고 물결위에 돌을 던지면 뇌성벽력의 소리가 난다고 한다.
이젠 흰 구름 푸른 산이 그 강물에 거꾸러져 절승의 풍치를 이룰뿐 강물만 유유히 흘러가고 황금빛 고기는 이곳에서 찾을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