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에서 보성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춘양역을 지나가노라면 삼월의 푸른 솔가지 사이로 점점이 뿌려 수놓은 듯 진달래의 만자천흥이 한폭의 그림처럼 창밖을 스쳐간다.
이 산모퉁이에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 있는데 금상첨화로 산그림자는 푸른강에 거꾸러져 있어 더욱 시원하게 보인다.
바른편을 우러러 보면 웅장한 괴암은 무산의 선녀가 하늘로 오를듯 사나운 호랑이가 나타나 사면을 응시한 듯 평지돌출로 이 바위가 솟아있다.
이 산을 옛부터 예성산이라 하였고 그 아래 솟아 뻗친 그림같은 이 바위를 베틀바위라 한다.
이 베틀바위에 얽힌 전설은 용랑의 전설과 두 가지가 있다.
지금부터 300여년을 거슬러 임진왜란때 일이었다.
화순군에 인접한 옥과에 청주한씨의 효자 한 분이 살고 있었다.
이 한효자는 편모를 모시고 살았는데 극진한 정성으로 어머니를 잘 모셨다.
그 어머니는 일찍 한효자의 아버지를 상배하고 생활이 곤궁하여 베틀에서 한푼 두푼 벌어 외아들과 생계 유지하고 독수공방 외로운 한을 달래가며 살았다.
겨울에는 무명베, 여름에는 삼베를 짜서 몇푼씩 모아 자리 밑에 넣어 일년씩 저축하여 모은 돈으로 논을 샀고, 밭을 사면서 어언간 그 마을의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던가, 이 세상에 인연인 다했는지 어머니는 불귀의 구천으로 가 버렸다.
한(韓) 효자는 항상 어머니를 생각하며 절절하게 슬퍼하는데 하필 임진왜란이 일어나 사람들이 피난하기에 급급한 터라 그도 역시 옥과에서 난을 피하여 외가인 용두골까지 찾아갔다.
처자식은 천천히 오도록 하였으나 무거운 베틀만은 등에 업고 길을 나섰다.
어머니가 평생동안 고락을 함께 했던 베틀은 생전의 어머니와 같이 소중히 여기었는데 말 못하는 물건이라 그대로 버려두고 갈 수 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용두골의 외갓집을 찾았으나 모두 몸을 숨겨버려 찾을 길 없게 되었다.
그때 어느 노파가
「 저 건너 바위에 올라가면 굴이 있읍니다. 거기에 사람들이 숨어 피난합니다. 찾아가 보시오.」
하고 길을 가르쳐 주었다.
한효자는 예성산까지 등에 베틀을 지고 허둥지둥 가쁜 숨을 몰아쉬며 노파가 가르쳐 준 굴을 찾아 올라갔다.
조금 트인 바위사이에 문을 만들어 달고 인근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는데 한효자는 그 문앞에서 애절한 호소로 문을 열어 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피난민들은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틀림없이 왜놈들의 첩자라고 생각하여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더구나 등에 베틀까지 짊어지고 찾아 온 모습은 수상함을 더욱 깊게 하였다.
한효자는 하는 수 없이 베틀을 짊어지고 다시 산을 내려 예성산 중턱에 걸쳐앉아 한숨을 쉬다가 내려다보이는 강 건너 편 절벽 한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음을 발견하였다.
하늘이 준 피난처라 기뻐한 효자는 강을 건너 바위를 안고 돌아가 등에 있는 베틀을 내려놓고 행장을 풀었다.
한편 옥과에서 뒤늦게 피난길을 나섰던 한 효자 가족들은 피난오는 길에 억울하게 부인이 왜놈의 손에 목숨을 잃자 두아들은 서둘러 장사를 지내고 정신없는 걸음으로 아버지를 찾아 예성산까지 올라갔다.
역시 마을 피난민들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어머니를 잃은 두아들은 아버지마저 찾을 길 없어 다시 내려오는 길에 방성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한효자는 건너편 산에서 갑자기 곡소리가 들려 자세히 살펴보니 두아들이 찾아와 슬피우는 것이 아닌가.
한효자는 깜짝 놀라
「 얘들아, 나 여기 있다!」
하고 외쳤다.
삼부자는 한자리에 모여 슬픔을 나누며 그 굴에서 피난을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어머니를 부르며 통곡을 하니 갑자기 물속에서 한효자의 어머니가 나타나 말하기를
「 내가 너희들이 난을 피하도록 보살피겠노라.」
하며 사라졌다.
삼부자는 거기에서 며칠동안 지내다가 옥과로 돌아갈려고 하던 날 밤, 물에서 과연 한효자 어머니가 다시 나타나 말하기를
「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리고 그 베틀은 물 속에 던져주고 가거라. 」
하며 조용히 사라졌다.
두아들과 아버지는 슬픔을 금치 못하며 베틀을 강물 속에 던져주었다.
그뒤부터 이 바위를 베틀바위라 하였다 한다.
지금도 사람들은 이 베틀바위에서 ＜아이고.. 아이고...＞ 하고 세번만 곡소리로 부르면 여자 물귀<@13>이 나타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