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주를 거쳐 이양으로 가는 길은 한폭의 그림처럼 좋은 곳이 많다.
그중 송석정은 천년의 고색이 창연하여 더욱 절경을 이루고 다시 한구비 돌아 가노라면 용암산이 물에 거꾸러져 이룬 용두리 앞의 괴암 절경은 산촌의 정취를 더해준다.
이 용두골과 용두리도 이제는 거의 잊혀진 전설을 묵묵히 간직하고 있다.
옛날 병자호란 때 진주정씨가 한분 살았다.
나라안이 뒤숭숭하여 백성들의 마음은 극도로 안정을 잃고 어지러운 때였다.
과거에 장원한 진주정씨는 벼슬을 포기하고 초야에 묻혀 살았다.
바로 용두골이었다.
그뒤 다시 병자년이 지나 정축년 봄이 되어 인조대왕께서 청나라 태종 에게 항복하여 북한산 아래 수항단을 세웠다.
이 치욕적인 소식에 의분을 참지 못한 정씨는 마을에서 1㎞쯤 떨어진 예성산 밑의 베틀바위 꼭대기에 정자를 하나 짓고 홀로 기거하며 처사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속세를 멀리 한 정처사(鄭處士) 는 용두골에 있는 자기집과 정자에 두줄의 모시줄을 달아놓고 밥과 술 그리고 안주와 편지의 왕래를 이 줄로써 이용하였다고 한다.
음풍농월과 진세초연한 낙도는 오죽 했으랴?
간신히 가족들이 안부를 살피려거둔 쪽지에 글을 적어 이 줄에 부쳤고 하루 세끼 사이에 술과 안주, 그리고 친구들의 안부도 이 줄을 통하여 연락되었다.
속세와 인연이 완전히 끊겨진 생활이었다.
이렇게 보내기 몇해가 지난 어느 해 여름이었다.
아침에 지어 올린 밥이 그대로 되돌아 왔다.
쪽지에 안부를 적어 보낸 글까지도 어찌된 일인지 그대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집안 사람들은 깜짝 놀라 정자를 찾아가 보았다.
정처사는 온데간데 없고 정자에 유혈만 낭자해 있어 겁에 질린 가족들은 황급히 집으로 돌아와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정처사를 찾았으나 알 길이 없었다.
그 후 며칠 뒤에 용암산 상봉 밑에서 호랑이에게 먹히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발견되었다.
그 뒤 부터 마을에서 용암산에 산신재를 지내기로 하여 여러 마을에서 모두 이에 따랐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정처사가 죽은 뒤로 정자만 쓸쓸히 남아 있었는데 정자에는 난데없는 검은 학 한마리가 매일 아침 일찌기 찾아와 하루 종일 정자를 배회하고 놀다가 돌아가곤 했다.
그리고 정처사가 죽은 제삿날은 흰 학들이 하늘을 가리도록 많이 찾아와 이 정자에 앉아 울어대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 정처사가 죽어 학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뒷사람들이 정자를 현학정(玄鶴亭) 이라 하고 봄 가을에는 선비들이 모여 시를 읊으며 정처사의 애절한 영혼을 위로하여 주었다.
그 뒤로도 학들은 여전히 정자를 찾았으나 한번 가버린 정처사는 돌아오지 않아 보는 이의 마음만 더욱 애절할 뿐이었다.
푸른 강물 위에 기암의 절벽을 이룬 산 위에는 이제 현학정도 학도 찾을 길 없고 어린 솔들만 빽빽히 서있다.
그때부터 학들이 용두리 뒷산을 찾아와 살기 시작하였는데 세상이 어지러우면 어디론지 사라져버리고 화평하면 모두 찾아와 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