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읍에서 동북방에 위치한 만연폭포를 끼고 있는 마을을 유천리라고 한다.
마을 뒷산 위에 괴바위란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 얽힌 전설이 하나 있다.
아득한 옛날 한 처녀와 총각이 서로 사모하고 사랑한 나머지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밤이면 남의 눈을 피하여 연못가에 앉아 견우 직녀가 만난 듯 밤이 깊도록 사랑을 속삭이며 뜨거운 정을 주고 받았다.
그후 그들은 처녀의 어머니께 승락을 받아 장차 백년을 함께 할 것을 굳게 약속하였다.
그러던 중 전란으로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젊은 청년 들은 모두 병졸로 뽑혀 싸움터로 나가는데 총각도 역시 가게 되었다.
일년만 기다려주면 돌아와 결혼을 하겠다고 약속을 한 총각은 일년, 이년, 삼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처녀의 부모는 남모르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기다렸으나, 소식이 없자 딸로 하여금 총각을 단념 시키고 다른곳으로 혼처를 구하게 되었다.
처녀는 날마다 동구밖을 바라보며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한숨만 쉬고 기다리던 어느날 아버지께서는 말씀하시기를
「 이젠 더 이상 기다릴 수도 없으니 너에게 좋은 베필을 맞게 해주마. 」
하고 사윗감을 찾았다고 기뻐하였다.
처녀 역시 더 이상은 약혼자를 기다리는 일이 허사임을 깨닫고 하는 수 없이 승락을 하고 말았다.
그후 혼삿날이 다가와 혼가에서는 청실홍실을 걸쳐 초례청을 만들어 예식준비에 바빴고, 이를 축하하고 구경하기 위해서 원근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이 기구한 팔자에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하필이면 그때 기다리던 총각이 돌아온 것이다.
총각은 그동안 싸움터에서 불구의 몸이 되어 처녀에게 실망을 줄까봐 돌아오지 못하고 산따라 물따라 헤매다니다가 처녀가 보고싶어 참을 수 없게 되자 남루한 옷차림도 잊은 채 옛 고향을 찾아 온 것이었다.
불구의 걸인이 된 총각은 마을 사람들이 알아볼 수 조차 없이 행색이 초라하였다.
어느 집인지도 모르고 마을 사람들을 따라 혼삿집에 들어섰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집이 바로 약혼녀의 집이었고, 바로 그 약혼녀가 지금 혼례식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 이 광경을 보게 된 총각의 가슴은 미어질 듯 아팠고 어지러워 쓰러질 지경이었으나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처녀 역시 처음엔 걸인과 시선이 마주치자 동냥 온 거지겠거니 하였으나 다음 순간, 그가 약혼자임을 알고 아연실색하였으나 그것을 밖으로 내색할 수는 없었다.
총각도 괴로와서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게 되자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그는 걸어서 연못가로 나왔다.
그곳은 처녀와 더불어 다정하게 사랑을 속삭였던 추억의 자리였다.
총각은 옛날이 그리웠다.
그리고 불구가 된 스스로의 몸과 약혼녀를 영원히 잃어버리게 된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달빛도 흐려 밤은 더욱 깊어 가는데 갑자기 숲사이로 인기척이 있어 시선을 돌려보니 누군가 바쁜 걸음으로 다가왔다.
유심히 살펴보니 바로 오늘 결혼식을 마친 신부였다.
총각은 신부를 보자 몹시 당황했다.
「 어찌된 일이오? 」
「 당신을 만나러 왔어요. 이젠 당신 곁을 떠나지 않겠어요.」
「 어찌, 그럴 수가......? 」
「 전, 돌아가지 않겠어요. 차라리 당신 곁에서 죽고 싶어요.」
신부는 걸인의 품에 얼굴을 묻고 한없이 울었다.
두 사람은 헤어질 수도 결합할 수도 없는 기막힌 운명이었다.
함께 울던 걸인 총각이 잠시후 입을 열었다.
「 당신은 오늘 혼례를 치룬 몸, 어서 돌아가시오.」
「 저는 당신 곁에서 죽는것이 소원입니다. 」
그녀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한치의 가식도 없었다.
걸인 총각도 마침내 결심했다.
「 그렇다면 함께 죽어서 저승에서나마 결합합시다......」
두 사람은 서로 보듬고 못속에 몸을 던졌다.
두 사람이 죽은 뒤에 갑자기 산골에 큰 바위 두개가 생겼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괴이한 일이라 여겨 괴바위라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또 다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 바위들은 만연산의 위와 폭포 옆에 하나씩 있었는데 칠팔년전 어느날 폭풍우가 쏟아지며 천둥소리와 함께 위에 있던 바위가 굴러 내려져 지금과 같은 자리에 나란히 놓이게 된 것이다.
옛날의 애절한 사연은 별로 아는 사람이 없고 다정한 두 바위 부근에는 오늘도 시원한 매미소리가 들리는데 등산객들만 무심히 스쳐갈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