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암면 봉하리(道岩面 鳳下里) 에 기임괴석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는 산이 수락산(水落山) 이다.
이 산과 서로 조화를 이루어 절경의 멋을 더해 주는 기암괴석들을 ＜마고욕정(麻姑浴井) 주암부석(舟岩浮石) 홍교암(虹橋岩) 금분석(金盆石) 선부암(仙扶岩) ＞이라 예로부터 불리우고 있으며 여기에 금상첨화로 장엄하고 높은 석벽(石壁) 에서 떨어지는 옥류(玉流) 의 폭포는 진(秦) 나라 무릉(武陵) 이요, 한(漢) 나라 상산(商山) 이든가 그게 아니면 당(唐) 나라 여산(廬山) 이나 송(宋) 나라 무이(武夷) 라 하겠다.
아마 여기를 일컬어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 의시은하락구천(疑是河落九天) 이라 하리라.
암벽에는 진사 김재탁(金再鐸) 이란 분이 천암경수(千岩鏡秀) 요 만확쟁류(萬○爭流) 라 각(刻) 하여 놓았다.
산명수려(山明秀麗) 한 이곳에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목욕을 하고 풍류로 달밤을 즐기며 거닐다가 닭소리 가 마을에서 들릴 때쯤 되면 조용히 구름을 타고 하늘로 사라지곤 하였다고 한다.
달 밝은 밤이면 내려와 목욕을 하던 신선은 다름아닌 마고선(麻姑仙) 또는 마고할매라고도 한다.
그 곱고 고와 청초하고 우아한 자태와 절색의 미모에 바람에 나부끼는 옷자락을 어찌 필설로 다하랴.
마고선은 청탄옥류(淸灘玉流) 에 몸을 풀고 한줌의 물을 쥐어 앞가슴도 쓰다듬고 뒷허리도 어루만지며 목욕을 하기 시작하였다.
눈빛처럼 희고 고운 살결에 부딪쳐 부서지는 달빛 때문에 더욱 수락산 숲속은 고요하였다.
이 때 아랫 마을 부잣집에 나이 사십이 되도록 장가도 못가고 살고 있는 머슴이 있었다.
「 수락산에 신선들이 내려 온다고 하니 구경이나 하고 견우 직년의 이야기처럼 옷을 남 모르게 감추어 아내나 삼아 보리라. 」
하루는 머슴이 그 곳을 찾아가 나무 그늘에 숨어 있었다.
과연 삼경이 가까워지자 마고선이 달빛 아래 나타났다.
바위에 걸터 앉아 주위를 살피며 하늘의 달을 우러러 보는 아릿다운 자태에 머슴은 도취되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윽고 마고선은 소매 속에서 옥퉁소를 꺼내어 몸을 옆으로 비스듬히 틀며 불기 시작하였다.
낮은 음은 노룡(老龍) 의 울음인 듯 간담을 흔들어 울리고 높은 소리는 청학(靑鶴) 의 부르짖음처럼 황홀경에 취와(醉臥) 하여 신비 무아의 경지였다.
마고선은 구슬픈 곡에 자신도 심취의 경지에 몰입 되는 듯 싶었다.
쓸쓸하고 한 맺힌 애절한 계면조(界面調) 는 머슴의 마음을 뒤흔들어 아내로 맞이하겠다던 욕심은 어느덧 사라지고 인생 사십 남의 집 머슴으로 전전하며 가정도 못이루고 살아가는 자신의 외롭고 서글픈 회포가 곡조에 따라 홍수 터지듯 넘쳐 눈물이 비 오듯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소리없이 흐르던 눈물은 옥퉁소의 슬픈 가락을 따라 차츰 방성통곡으로 변하였다.
마고선은 문득 불기를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건너편 숲속에서 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한동안 숲을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 숲속에 그 뉘가 있읍니까? 」
머슴은 서둘러 눈물을 닦았다.
「 저는 아래 마을에 사는 농부입니다. 」
「 그럼 어찌하여 우시는지? 」
「 예, 사십이 되어도 돈이 없어 장가조차 들지 못한 처지로 신선님의 곡조에 저절로 눈물뿐입니다. 」
「 그럼 이 아래 폭포로 나오십시요. 」
마고선은 지팡이를 짚고 위쪽 폭포에서 내려와 머슴에게 금방울을 하나 주었다.
「 어떤 환자라도 병석(病席) 에서 이 방울을 흔들면 즉시 나을 것입니다. 」
그후 머슴은 앓고 있는 환자만 보면 금방울을 흔들어 모두 치료하여 주니 병을 고친 사람이 다투어 곡식과 금은 보화를 주어 부자가 되었고 소원이던 장가도 들게 되었다.
이 마을에 욕심 많고 여색을 좋아하는 중국사람 소(蘇)
부자가 머슴이 마고신에게 금방울을 얻었다는 소문을 듣고 자기도 보물을 얻어 볼 양으로 달밤, 삼경에 선녀탕(仙女湯) 을 찾아가 부근 숲속에 숨어 있었다.
이윽고 삼경이 넘어 마고산이 내려와 퉁소를 불기 시작하였다.
욕심만 많은 소부자는 슬픈 곡조에 눈물은 커녕 아릿다운 미모에 눈이 어두어서 허리를 껴안아 보고 싶은 색정(色情) 에 사로잡혀 입안에 침이 마르기 시작하였다.
퉁소를 불던 마고선은 이제 서서히 물을 찾아 옷을 벗고 목욕을 하기 시작하니 숲속의 소부자는 참지 못하고 선녀탕 가까히 걸어나와 목욕하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바라보았다.
「 뒷날 퉁소 소리가 나거든 찾아오십시오. 」
마고선은 서둘러 옷을 입고 승천하고 말았다.
그뒤, 마고선은 수락산에서 천태산으로 목욕터를 옮겨 버렸다.
그러나 발자취의 유적이 남아 천태(天台) 수락산(水落山) 에는 여기저기 흔적들이 남아있다.
소부자는 밤마다 옥퉁소 소리를 기다렸으나 들리지 않자 매일 밤마다 수락산을 찾아가 숨어 있었다.
소부자가 선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문이 멀리 퍼져 나가자 나주고을에 퉁소를 잘 불던 기생이 부자를 속여 골탕을 먹일 생각으로 수락산을 찾아갔다.
능라금수(綾羅錦繡) 고운 맵씨에 퉁소를 끼고 계면조로 한(恨)을 불기 시작하였다.
「 옳지 오랜만에 왔구나! 」
소부자는 숲속을 헤치며 걸어 올라갔다.
청초한 맵씨로 앉아 부는 퉁소 소리는 흰 구름이 가고 물이 흐르듯 하여 소부자를 유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숲속에 숨어 있던 소부자는 용기를 내어 선녀가 앉은 바위 밑까지 올라갔다.
「 아래, 그 누구십니까? 」
선녀는 시치미를 뚝 떼고 물었다.
「 아래 마을에 사는 사람입니다.」
「 그대가 천년 불로주를 먹고 신선이 되고 싶거든 내일 저녁에 아무도 몰래 돈 백량을 준비하여 이곳으로 찾아오십시오. 」
소부자는 다음 날, 백량을 준비하여 그곳으로 찾아갔다.
불로주를 마시고 천년을 산다면야 돈 백량이 아깝겠는가.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달빛 아래에서 신선이 나타나기만 기다렸다.
선녀는 언제 천상에서 수락산으로 내려왔는지 상수락을 거쳐 하수락 바위에 앉아 있다가 퉁소를 불어대기 시작하였다.
퉁소 소리가 잠시 그친 순간 소부자는 나무 숲 보이지 않은 그늘속에서 정중히 말하였다.
「 돈 백량을 준비하여 왔읍니다.....」
선녀는 태연히 대답했다.
「 눈을 감고 이 바위 위에 돈을 올려 놓으십시요. 만일 눈을 뜨면 신기누설(神機漏泄) 로 천벌을 받습니다. 」
소부자는 눈을 감고 더듬거리며 모두 바위 위에 옮겨 놓았다.
그러자 선녀는 하얀 자기(磁器) 술병을 눈을 감고 있는 부자의 손에 쥐어주었다.
「 어제 내려가 매일 밤 자정에 한 잔씩만 드십시요. 」
그리하면 신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알리면 천벌로 즉사할 테니 명심하십시요. 」
「 예, 예. 」
소부자는 허둥지둥 대답하고 소경처럼 더듬거리며 산을 내려 갔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어느 때인지 나주고을의 실존 연대가 미상인 홍매(紅梅) 의 호협적인 얘기로 중국사람인 소씨를 골려주려고 술에다 소태나무를 담가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쓴 술을 만들어 백량을 받고 주었다는 일화다.
아뭏든 지금도 선녀가 목욕했던 곳, 옆에 있는 넓은 바위에는 두 무릎을 꿇고 머리를 감으며 두 손을 짚었던 흔적들이 완연(完然) 하며 여기 마고욕정(麻姑浴井) 에서 산위까지 걸어 갔다고 하는 마고선의 발자욱 흔적이 바위마다 지금도 남아 있다.
그리고 여기 목욕터에는 ＜머리빗 바위＞가 실제로 머리 빗는 빗과 같은 모습으로 서 있고 ＜경대바위＞는 또 거울과 같은 모양으로 지금도 서 있다.
윗 폭포에서 옷을 씻고 아래 폭포로 내려왔던 흔적이 있어 장암(杖岩) 이라 한다.
천연적으로 깊은 샘이 되어 있는 석정(石井), 닷(楫) 이 없이 떠 있는 듯한 배바위(舟岩), 종(鍾) 을 매달려 놓은 듯한 부석(浮石), 땅에서부터 하늘을 향하여 솟아 있는 무지개 바위(虹橋岩) 가 사이의 푸른 소나무와 함께 어우러져 있는 자연의 풍치는 더욱 가경(佳景) 이 아닐 수 없다.
이젠 마고선녀의 이름만 전해 올뿐 볼 수는 없고 계곡의 물소리와 나무 가지 사이에서 지저귀는 크고 작은 산새들의 울음소리만 한가한 수락산의 정취(情趣) 를 더하여 줄뿐인데 아직도 마을 사람들은 모두 마고할머니의 목욕터라고만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