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에서 동면으로 가는 도로변에 미륵골이란 들이 있다.
이곳은 난산(卵山), 속칭＜알맷등＞ 이란 산 아래로 원래 돌부처가 서 있던 곳인데 지금은 돌부처는 흔적없고 이름만 전하고 있다.
전하는 바로는 아주 먼 옛날 조담선사께서 장래 오만년의 법주인 내세불 모실 곳을 찾아 방방곡곡을 헤매다가 우연히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사면을 살펴보니 난산은 노적봉으로 만년식록이요, 건너 불선봉은 부처와 선인이 설법을 하는 상인데 뒤에 나한산은 오백라한이 이 터를 수호하며 청법하는 상이었다.
그리고 서편 종괴산은 지옥고을 파하고 서방정토에 낳도록 깨우쳐 주는듯 종을 매달아 놓았으니 여기를 억만세삼보 도량으로 택하고 터를 다듬어 절을 짓기 시작하였다.
수백명의 스님과 일꾼들이 모여 절을 지으며 미륵불을 모시기로 하고 부처님 조성할 석재를 구하려 여러곳을 찾다 제일 높은 명산에서 구하기로 하여 서석산. 즉 무등산 상봉으로 찾아갔다.
조담선사는 도력으로 돌을 흡사 목재를 절단하여 다듬듯 하여 놓고 그중 가장 크고 높은 돌을 하나 골라 도력으로 하루밤에 이곳까지 옮겨 놓았다.
지금의 입석과 서석은 그때 조담선사께서 고르다 버려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무등산 돌은 이 선사의 도력으로 다듬어 자연석이면서도 인조석으로 깎아 세운 것처럼 되어 있어 전국 어느 산에서도 보기 드문 절묘한 광경이라고 한다.
그후 온갖 정성과 기도로써 수년에 걸쳐 조성하였으니 곧 미륵부처였다.
이 부처는 무등산 입석 서석보다 더 크고 높은 돌로서 능주, 영암까지 보였다고 하니 그 높이가 가히 알만하여 논산 관촉사 미륵불에는 비교할 수 없는 거불이었다고 한다.
그후 절은 연곡사라 하여 이름도 높았을뿐만 아니라 이 고을 사람들의 유일한 기도 도량이 되어 모든 소원에 신통한 영험을 이 미륵불로부터 얻었다는 것이다.
그후 춘풍지후 성상을 지내는 동안 갑자기 이골 저골에 괘질이 만연되어 민심이 어지러운데 흉년은 거듭되고 도적떼가 들끓어 세상의 인심이 심히 거칠었다.
설상가상으로 죽수부리에는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이 미륵불이 보이는 마을에는 역귀가 찾아들어 전염병으로 마을을 망칠뿐만 아니라 부녀자는 음탕하여 가문에 망신살이 떨어진다는 소문이 나돌아 미륵불을 무너뜨리기로 모의를 하였던 것이다.
이 모의는 이마을 저마을로 전하여 이윽고 미륵불이 보이는 마을마다 장정들이 어두운 그믐밤을 이용하여 미륵불을 찾아왔다.
장정들은 모두 미륵좌대 밑을 파고 큰 새끼줄로 미륵불 몸을 걸어서 무너뜨리니 조담선사의 도력도 아랑곳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부처가 누어버리면서 천둥소리가 났는데 이 역군들은 모두 벌을 받아 귀머거리가 되었다 한다.
괴이한 일이었다.
미륵불이 누어버린 뒤부터는 이상하게도 절간 방에는 물론 대웅전과 헛간까지도 빈대가 들끓어 살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범이 몇마리씩 날마다 나타나 웅크리고 문을 할퀴며 사람을 삼킬듯 발악하였다.
이를 본 여러 스님들은 하는 수 없이 절을 비워두고 어디론지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뒤 빈 절에는 밤마다 도깨비들이 횃불을 들고 장난하더니 법당마저 불이나 모두 타버렸다.
연곡사는 그렇게 하여 없어져 버리고 미륵불만 누워있게 되었다.
필자가 어렸을 때의 기억이지만 당시 미륵골의 도깨비 이야기를 귀가 아프도록 들었고, 어우러지는 도깨비 불 구경을 실제로 한 기억이 생생하다.
이제는 절도 없어지고 미륵불만 남아 긴 세월을 말없이 누워 있고 절터는 모두 논과 밭이 되어 이름으로만 사장등이란 말과 함께 미륵골의 이름만 전한다.
지금으로부터 삼사십년전만 하여도 이 와불은 농부들이 앉아 잠시 일손을 쉬는 유일한 쉼터였는데 석공들이 이 장엄한 돌부처를 산산조각으로 망쳐 각양각색 석재가구와 절구통, 주춧돌 등을 만들어 팔아 없앴다.
요즈음에는 돌부처 흔적까지 찾아 볼 수 없게 되어버렸고 다만 농부들은 미륵골이란 이름만을 우리에게 전한다.
그러나 옛날 그 절터의 샘물은 지금도 여전히 흘러 한여름에는 냉차를 방불케 한다.
그러고 보면 오직 변함없는 것은 물 뿐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