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역(和順驛) 에서 기차를 타고 광주를 가노라면 앵남역(鸚南驛) 이 있다.
여기에서 내려 남평 가는 길을 따라 가면 염재(鹽峙) 란 고개가 있고 여기서 오른편으로 접어드는 새마을 도로를 타고 들어 가면 앵남리(鸚南里) 삼구 대행사(大行寺) 골 또는 쌍계촌(雙溪村) 이라고 하는 작은 마을에 이른다.
여기까지는 새마을 사업으로 농로, 공동샘, 교량까지 비교적 잘 되어 있는 편이다.
다시 여기에서 산골을 타고 올라 막바지에 이르면 옛 쌍계사라고 하는 절터가 있다.
산세가 준엄하고 용호가 장포(藏抱) 하여 대찰(大刹) 의 명기(名基) 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과 읍지(邑誌) 에 기록(記錄) 된 절터였다.
두 골짜기에서 맑은 물이 옥구슬 쏟아지듯 흘러 절터 밑에서 합류한다.
그래서 쌍계사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쌍계사는 없어지고 전설만 80된 몇 분의 노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당시에는 이 절이 부찰(富刹) 로서 수백석의 벼를 받아들여 사시(四時) 를 가리지 않고 물방아를 찧었으므로 물방아터가 있다고 한다.
수백명의 스님이 외는 새벽 예불 소리로 산골이 은은하였고 그 목탁 소리와 향 냄새는 수십리 밖까지 흘러 퍼졌다.
그런데 절 입구 바위 틈에는 장군수(將軍水) 란 약수(藥水) 가 있어 외부사람들 몰래 숨겨진 채 전해오고 있었는데 항상 이 절에 주지 되는 큰 스님끼리만 귓속말로써 대대(代代) 로 그 장소를 알려 주었다고 한다.
한때는 그 비밀이 누설되어 산너머에 있는 도둑들에게 누설되어 이 물을 마신 그들은 장사가 되어 장날이면 장꾼들을 노략질 하곤 하였다.
당시 남평은 남도의 요지로서 각 지방의 산물이 산더미처럼 모여들어 교환되던 곳이었다.
그때 남평장을 다녀가는 많은 장꾼들이 이 염재에서 산적들에게 재물을 약탈 당하고 예쁜 여자들까지 빼앗겼다.
이처럼 신통했던 약수는 경내에서도 다른 스님들은 모르고 오직 주지스님만이 밤중 삼경이면 절안의 고요함을 틈타 큰 바위를 떠들고 약수를 마셨다고 한다.
약수는 하루에 겨우 한잔 정도밖에 나지 않아 그 물을 먹기 위하여 유기(놋그릇) 를 물 위에 띄워놓고 밤중에 찾아가 먹었다는 것이다.
어느날 남평 우산리에 사는 송(宋) 씨 한 분이 명당을 구하기 위하여 방방곡곡을 헤메다가 이 쌍계사(雙溪寺) 를 찾아와 이곳에서 명혈(明穴) 을 찾아냈다.
그는 이 묘자리를 얻기 위하여 온갖 수단 방법으로 모사를 하여 보았으나 스님들은 결코 허락하여 주지 않았다.
어느날 송씨는 이 절에 약수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밤중이면 인적을 피하여 주지스님 혼자서 남몰래 약수를 마신다는 사실까지 절의 머슴을 통해 듣게 되었다.
송씨는 그날부터 절밑 동구(洞口) 마을에 주거를 정하고 수양을 빙자하여 머물렀다.
송씨는 밤이면 몰래 숨어들어 약수터를 찾고자 노력하였고 낮에는 주지를 만나 명당자리를 얻고자 갖은 수단을 다하였다.
그러나 약수를 찾기도 주지스님을 설득하기도 어려웠다.
어느날 밤, 달빛은 밝아 휘영청 은분(銀粉) 을 뿌려 놓은 듯, 은하(銀河) 는 멀리 북쪽 하늘에까지 뻗쳤는데 아마 천지도 잠들었는지, 쥐죽은 듯이 고요하기만 하였다.
송씨는 솔 그늘에 몸을 감추고 쌍계사 전경을 올빼미 밤눈 보듯 보살피고 있었다.
절 건너편 어두컴컴한 바위밑에서 ＜딸그랑!＞하는 쇠그릇 소리가 들려왔다.
송씨는 깜짝 놀라 즉시 그곳에 시선을 집중하여 살펴보았다.
다시 쇠그릇 소리가 나더니 한참 있다가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 절로 올라갔다.
조심스럽게 보고 있던 송씨는 마침내 주지스님을 확인하였다.
그길로 돌아가 잠을 자고 그 다음날 그곳을 찾아가 보니 그곳에는 큰 반석이 하나 놓여 있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들 수 없는 돌이었다.
송씨는 며칠간을 생각한 끝에 큰 철제의 지렛대를 준비하여 다음날 다시 스님 나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삼경(三更) 이 되자 스님이 조심조심 나타나 놋그릇으로 물을 먹고 가는지 다시 쇠소리가 났다.
스님이 사라지자 송씨는 안심하고 그곳을 찾아가 쇠지랫대로 그 반석을 들어 보았다.
과연 반석 밑에는 놋그릇 잔과 물이 조금 고여 있었다.
매가가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이라 송씨의 소원이 점점 성취되어 가는 듯 했다.
그 다음날도 스님이 지나간 뒤에 찾아가 지랫대를 떠들어 보니 역시 놋그릇에 물먹은 흔적이 분명하였다.
그 다음날은 일찍 찾아가 숨어 있다가 삼경에 못 미쳐 그 반석을 떠들고 보니 고인물에 그릇이 떠 있었다.
송씨는 조심스럽게 한잔의 약수를 마시고 감쪽같이 절에서 빠져나왔다.
그날밤 스님은 삼경의 고요한 야음을 이용하여 평소와 같이 조심조심 찾아가 바위를 떠들어 보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약수가 없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한방울씩 떨어져 하루에 겨우 한잔쯤 고이던 약수터에 빈 그릇만 놓여 있으니 놀란 스님은 하는 수 없이 자기 방으로 되돌아 오고 말았다.
스님은 남에게 말못할 이 사실을 놓고 혼자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고민했으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다.
절 안에는 그것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설마 알았더라도 돌을 움직일 힘을 가진 사람도 없을 터였다.
한편 송씨는 또 삼경이 가까워지자 다시 지랫대로 돌을 들어 한잔 약수를 또 마시고 나서 감쪽같이 돌을 놓아 둔뒤 돌아왔다.
스님은 또 다시 삼경이 되어 약수터로 찾아가 보았으나 어제밤처럼 역시 약수는 없었다.
스님은 산을 우러러 보며 탄식했다.
「 허허 이 무슨 괴변인고...... 나무관세음보살...... 」
그러나 송씨의 일은 잘 되어 가는 판이었다.
그는 약수의 힘으로 얼굴이 동안(童顔) 처럼 고와지고 힘이 샘물솟 듯 하였다.
몇달동안 약수를 마시자 지랫대 없이 돌을 들 수 있는 힘이 나왔다.
그러나 스님은 밤마다 약수터에 찾아가 보았으나 약수는 영영 소식이 없었으니 생각다못한 스님은 이 절과 인연이 다 되었으므로 약수가 끊어진 것이라 생각하고 절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떠나버렸다.
송씨는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힘이 더하여 마침내 장사로 불리게 되었다.
송장사는 중국 항우(項羽) 가 재생한듯 힘을 과시하며 이제야 때는 왔구나 하고 명혈에 묘를 쓰기로 작정했다.
남평송씨(南平宋氏) 문중(門中) 에서 길일을 정하여 장엄한 의식으로 장례를 하는데 송장사를 맨 앞에 세워 길을 인도하게 했다.
그의 풍채는 관운장을 연상케 하였다.
스님들도 송장사(壯士) 앞에서는 그 위엄에 눌려감히 아무말도 하지 못하였다.
상여 앞에 가면서 수백년 노송을 한팔로 뽑아 던지며 장지에 까지 상여를 인도하니 보는 사람이 모두 경탄하였다.
지금도 그때 솔을 뽑아 던져 버렸다는 흔적이 여기저기 웅덩이로 남아있고 송씨의 묘소가 있는 산등을 송가등(宋家嶝) 이라고 부른다.
그뒤부터 절에는 우연히 빈대가 들끓어 살 수 없게 되자 중들은 하나, 둘씩 산을 떠나 패사(敗寺) 가 되기 시작하였다.
그후 이 절을 뜯어 그 목재가 화순 세양리(細楊里) 조씨(曺氏) 제각(祭閣) 으로 지워졌고 나머지는 화순현감이 거처하는 동헌의 객사를 지었다고 전한다.
일제 때 동헌객사는 헐려 흔적조차 없어지고 세양리 조씨제각(曺氏祭閣) 은 지금도 남아 있다.
쌍계사는 이렇게 하여 없어졌다.
절터는 논이 되어 이제 통일벼, 유신벼만 무성하고 여기저기 바위에 칡넝쿨 속에서는 풀벌레가 울어댄다.
기왓장과 물소리 뿐인 소나무 숲속에서 우연히 만난 노인말에 의하면 지금도 청명한 낮에는 ＜쨍그랑!＞ 하는 놋그릇 잔소리가 어디서인지 들린다고 농담 섞인 말을 하며 빙그레 웃고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