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湖南) 팔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화순의 적벽은 언듯 중국 호북성(湖北城) 양자강(楊子江) 변에 자리잡은 소상적벽(蕭湘赤壁) 을 연상케 하고 소동파(蘇東坡) 의 적벽부(赤壁賦) 가 생각나게 한다.
옛 삼남지방에서 연하(烟霞) 를 아끼는 선비들이 줄곧 이 적벽을 찾았고, 벼슬아치들은 동복(同福) 현감을 영광스러운 부임으로 생각하였다.
이 웅장하고 수려한 경관은 그 어느 곳에 찾아 보아도 흔치 않은 곳이요, 손색이 없는 풍치로써 중국 적벽과 거의 배경이 같고 다소 규모가 좀 적을뿐 이라고 전한다.
적벽은 물염적벽(勿染赤壁) 과 장항적벽(獐項赤壁) 으로 나누어 말할 수 있는데 물염적벽은 장항적벽에 비하여 규모가 더 작으나 시내와 자연의 경관은 더욱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장항적벽의 뒷산은 옹성산(甕城山) 으로 흡사 독그릇을 세워 놓은듯 이어져 있어 옹성산이라 하였다.
적벽이란 이름은 이조 중종 때 광양(光陽) 의 최산두(崔山斗) 가 귀양길에 조정암과 함께 적벽강에 머물면서 적벽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그뒤 이 강을 건너 산골에 절을 세우고 중국 적벽의 절 이름을 모방하여 한산사(寒山寺) 라 하였고 중국 적벽의 고소대(姑蘇臺) 란 이름을 빌어 여기에도 고소대를 명명(命名) 한 것이다.
물염적벽에는 물염정(勿染亭) 이 있고 장항적벽에는 망미정(望美亭) 이 있는데 물염정은 송정순(宋庭筍) 이 정각을 짓고 여기서 연하(烟霞) 를 즐기며 시주(詩酒) 로 세월을 보냈고, 망미정은 장항리에 사는 정지준(丁之雋) 이란 분이 병자호란 이후 세정을 멀리하여 이곳에 정자를 짓고 풍류가객들을 모아 선유하며 거문고와 술로써 이 정자에 벗들을 불러 모았다고 한다.
또 다른 이설(異說) 에는 물염정을 지은 뒤에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등이 모여 시(詩) 와 서(書) 로 교류하면서 물염적벽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말하자면 물염적벽이란 이름은 김인후와 임억령이 지었고, 장항적벽은 최산두와 조광조가 지었다고 말하면 좋을 듯 하다.
이처럼 명인 달사(達士) 들이 이곳을 찾았고 사시풍치를 바꾸어 절경을 이루는 이 적벽강이야말로 시인묵객 들과 재자가기(才子歌妓) 들이 그칠 줄 모르고 줄을 이어 망미정과 물염정에서 세월을 영탄하며 즐겼던 곳이다.
건너편 한산사(寒山寺) 에는 규모는 적으나 퍽 영험이 있다는 부처가 모셔져 있어 멀리 광주지방의 신도들이 모여 칠성각을 지었고 동굴속에는 폭포와 약수터가 있어 약수 한 잔으로 속진에 쌓여 어두웠던 마음이 환히 열린다.
삼월 삼일, 오월 단오절이 되면 아낙네들이 모여 화전놀이를 하였고 씨름과 시화년풍(時和年豊) 을 노래했다.
칠월보름의 기망(旣望) 에는 전라관찰사, 암행어사, 나주목사, 능주목사, 순천부사, 장흥부사들이 함께 적벽강에 자리를 마련하여 옛 적벽부를 관기들로 하여금 거문고에 실어 율여(律呂) 에 맞추어 읊었으며 소동파(蘇東坡) 의 옛 정취를 만끽하면서 먹 갈아 시를 쓰고 기녀들의 춤가락에 술잔을 기우렸으니 그야말로 가는 청춘 오는 백발을 서산낙조(西山落照) 에 붙여 아쉬워 하였으리라......
날 저물어 동산에 달이 뜨면 배를 타고 선유하니 청풍은 서래(徐來) 하고 수파(水波) 는 불흥(不興) 이라, 그 뉘가 알랴, 추칠월 기망에 소공(蘇公) 의 풍류를......
그 뿐이랴. 달 뜨기전 행사로서 낙화(落火) 놀이는 뻬놓을 수 없는 장관(壯觀) 이 아닐 수 없다.
징, 꽹과리, 장구, 젓대, 태평소까지 곁들어 푸짐한 농악 구정놀이 장단에 적벽산 상봉에서 떨어지는 해같은 불덩이는 천상 선인의 도술인양 물을 비추면 물속에서 또 하나의 불덩이가 따라오른다.
이윽고 산 위에서 떨어지는 불덩이가 적벽강 수면에 다달아 합하는 광경이야 말로 가경(佳景) 에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이때에 남궁가(南宮歌) 북궁수(北宮愁) 로 동복고을의 주인인 현감의 안타까운 모습은 눈으로 차마 볼 수가 없다.
여기에 모인 관찰사, 목사, 부사, 각 고을의 귀빈들은 산수 좋고 술 좋은데 금상첨화로 옆에 앉은 계집의 권주가는 취흥을 더욱 돋궈 가가(○○) 의 대소(大笑) 로 웃어 화기를 더욱 자아낸다.
또한 이곳은 저 방랑시인 김삿갓과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머물러 세월을 보내다 동복 한천(寒泉) 안참봉(安參奉) 사랑방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전한다.
지금도 김립(金笠) 의 시집에 적벽강시가 있어 그 옛날 적벽의 아름다움을 더 해주는데 이제는 동복수원지가 되어 광주시민의 젖줄이 되었으니 실로 기이한 일이다.
옛날 광주목사 이서구(李書九) 가 이 적벽을 지나가면서
「 뒷날 내가 처(處) 해 있는 광주 백성들이 이 물을 먹게 될 것이다.」
하였다고 한다.
이 말이 노인들 입으로 전하면서 광주천에 다리가 열두개 놓이고 동복 적벽강 물을 먹으면 태평성세가 올 것이라 했다는데 이제 적벽강 물을 먹게 되었으니 남북통일의 날도 멀지 않을런지?
기다리는 마음 간절할 뿐이다.
적벽을 말하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적벽산의 산죽이다.
이 대로써 단소(短簫) 를 만들면 청아한 성음(聲音) 은 그 어느곳의 대도 당할 수 없는 일품이었다.
이제는 수원지 확장공사로 또 다시 수몰지구가 되어 적벽과 한산사(寒山寺) 망미정(望美亭) 도 영영 찾을 길 없이 물속에 묻혀 버리고 만다고 하니 산수의 변화가 이토록 무상하랴.
우리 고장으로서는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노산의 시 한수로 마음을 달랠 뿐이다.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
밀고 당기어
유리궁 수정세계 눈이 부신데
오색이 떠 오르는 적벽 강물에
옷 빠는 저 새아씨 선녀 아닌가?
＜노산 이 은상. 赤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