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에서 도암행 버스를 타고 가노라면 차창 밖에 황금빛 벼이삭과 검푸른 송림 사이에 자리 잡은 아담한 마을들은 멀리서 보아도 순박하고 온후한 냄새를 풍기며 한가롭기 그지없다.
이따금 보이는 초가지붕의 빨간 고추는 옛 향수를 불러 일으킬뿐만 아니라 색의 조화를 이루어 더욱 눈길을 끈다.
버스가 도암 용강리를 거쳐 산길을 헤치고 조금 들어 가면 별유천지(別有天地) 인양 돌부처와 탑들이 여기저기 서 있어 장엄(壯嚴) 함을 더해준다.
아득한 옛날, 이 산에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운주(雲珠) 라는 도사가 한분이 살고 있었다.
운주도사는 매일 산에 올라가서 세상의 태평을 비는 기도를 올렸다.
「 상제께옵서는 인간사파(人間娑婆) 세상을 두루 살피시어 억조창생(億兆蒼生) 들에게 무궁한 복락을 내려 주옵소서......」
운주도사가 하늘에 기도를 올리기 시작한 일천일이 되는 날이었다.
그날도 운주도사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는데 하늘이 별안간 붉어지며 어디서인지 은은한 음률(音律) 이 들려왔다.
「 오! 하늘이시어. 소인에게 이적(異蹟) 을 베푸소서.
이제 이 강산이 아름답고 풍요하며 자손 대대로 번창하게 하옵소서. 」
운주도사가 정성을 다해 기도를 올리자 음률이 더욱 가깝게 들려오며 눈앞에 환하게 비쳐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 운주는 고개를 들고 나를 보도록 하라. 그대의 지성스런 정성이 나를 감동케 하였으므로 내가 그대의 소원을 들어 주리라.」
운주도사는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보니 눈이 부신 황금빛 옷을 입은 사람들이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너무도 감격한 운주도사는 얼른 땅에 엎드렸다.
「 오! 천제(天帝) 시어. 소인의 청을 들어주시어 감사합니다.」
구름을 타고 내려온 황금빛 옷을 입은 사람들은 서서히 산골짜기로 내려와서 각각 흙을 파서 탑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일제히
「 나무관세음보살......」
하고 외치자 산이 떠나갈 듯이 우렁찼다.
운주도사는 잠시동안 정신을 잃고 그들을 바라보다가 한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 당신들께선 어디서 오셨읍니까?」
「 우리는 하늘에서 왔소이다. 하늘에 계신 천제께서 우리를 이 땅으로 내려 보내셨소이다. 우리는 이곳에 각자 탑 한개를 세우고 우리와 똑같은 모습의 부처를 세운다음 떠나게 되오. 」
「 참으로 감사하옵니다. 그러하오면 이 땅은 복을 받게 되는 것이옵니까?」
「 그렇소. 당신의 지성스런 기도에 천제께서 감동하시었소. 이제 이곳에 천불(千佛) 과 천탑(千塔) 이 세워지면 영구히 백성들이 복(福) 을 받고 이 세상의 모든 재앙을 면하게 될 것이오.」
「 알겠사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어느덧 산골짜기에는 천사(天使) 들이 흙으로 빚은 탑들이 즐비하게 세워졌다.
「 흙으로 빚은 탑이 어떻게 풍우(風雨) 에 견디겠읍니까? 」
「 그대는 염려를 마오. 비록 우리가 탑을 흙으로 빚었지만 천제만세 무궁무진하게 남을 것이오. 그러니 그대는 탑과 보살을 위해서 이곳에 절을 짓고 더욱 창생들을 위해서 기원을 하시오.」
그들은 얘기를 마치자 또한 오묘한 음률이 울리는 가운데 천지가 다시 밝아왔다.
「 휴 휴 - 아 내가 꿈을 꾼 것인가? 」
운주도사는 사면을 둘러보았다.
＜ 아! 천제께서 기어코 내 소원을 들어 주셨구나.＞
운주도사는 춤을 추며 기뻐했다.
과연 기적이 이루어진 것이다.
일월이 변한 사이에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은 모두 서로 등을 마주대고 돌부처로 화(化) 했으며 그들이 흙으로 빚은 탑은 흙이 아니라 훌륭한 석탑이었던 것이다.
「 오! 천신의 힘은 영험하시도다.」
운주도사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천신에게 감사를 올렸다.
그리하여 그는 그날부터 절을 짓는 공사를 시작하여 삼년이란 긴 세월을 걸려서 절을 완성했다.
「 모두들 모이시오. 부처님의 하해(河海) 와 같은 은덕과 구원을 받으시오.」
운주도사는 인근 마을로 돌아다니며 포교(布敎) 를 시작했다.
「 우리 절엔 천불(千佛) 과 천탑(千塔) 을 모셨읍니다. 누구나 부처님을 믿으면 영생 복락을 얻게 될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운주도사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 흥! 그 산골에 뭐가 있다고 그래. 그리고 뭐 천불상과 천탑이 있다고? 그런 거짓말이 어디 있어.」
「 글쎄 말일세. 나는 오십 평생을 살도록 그 산골에 천불상이 있기는 커녕 절이 있다는 얘기도 못들었거든.」
「 미친 녀석이야. 미치지 않고서는 그런 허튼 소리를 할라구.」
비록 비웃음을 들었지만 운주도사는 포교를 조금도 쉬지 않았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 자, 그러지 마시고 어느 문이라도 좋으니 한분만 나를 따라 오시오. 그러면 천불(千佛) 을 모신것을 보실수 있을 것입니다.」
역시 마을 사람들은 운주도사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생각다 못한 운주도사는 자기 한몸을 희생시켜서 어리석은 중생들을 구원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하늘에 기도를 올려 자기의 몸이 거북이로 화신하도록 빌었다.
운주도사의 청을 받아들인 천제께서는 그를 마침내 거북이로 화신하도록 해주었다.
운주도사는 길이가 육척이나 되는 큰 거북이가 된 것이었다.
그는 거북이가 되어서도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산골로 인도하여 천불과 천탑을 구경시킬 수 있는가를 생각했다.
그리하여 거북이가 된 도사는 다시 마을로 내려와 울면서
「 여러분이 저를 믿지 않아 거북이로 몸을 바꾸었읍니다. 어서 저의 등을 타시면 저의 절로 모셔드리겠읍니다.」
하고 매일 마을 사람들을 천불상이 있는 곳으로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거북이등을 타고 산속으로 들어가 본 사람들은 비로소 도사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으며 또한 수많은 불상과 탑을 보고 모두들 놀랐다.
그 후부터 마을 사람들은 비로소 운주도사가 중생을 위하여 화신한 거북이를 애석하게 여기면서 모두들 진실한 신자가 되었으나 거북이가 된 도사는 끝내 사람으로 환생하지는 못하고 죽을때까지 마을 사람들을 태우고 다녔다고 한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천불이 있는 산이라고 하여 이 산을 천불산(千佛山) 이라 불렀고, 도사가 지은 절은 그의 이름을 따서 운주사(雲珠寺) 라고 부르게 되었다.
많은 탑이 있는 산골짜기는 다탑봉(多塔峰) 이라 불리었다.
도사가 화신한 거북이는 늙어 절 뒷산으로 올라가 죽으면서 다시 큰 바위로 변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 바위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제사를 지내주었다고 한다.
그 후부터 이 산봉우리를 거북이 등(嶝) 혹은 자라등이라 한다.
지금도 이곳을 천불(千佛) 천탑(千塔) 골이라고 부르며 16기(基) 의 탑과 머리부문만 남은 석불이 50기 가량 남아었다.
그런데 탑의 모양이 원탑(圓塔) 과 구탑등으로 되었으며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기이한 모습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그리고 석실(石室) 과 그 안에 오척의 석불(石佛) 이 밭 가운데 남아 있으며 삼체불(三體佛) 중의 일체불(一體佛) 은 바로 아래에 있는 암석 위에 있고 일체불은 보이지 않는다.
이 절은 원래 운주사(雲珠寺) 였으나 그후 어느 스님이 와 주거(住居) 하면서 이곳은 지세(地勢) 가 행주(行舟) 형으로 되어 있어 운주사(運舟寺) 로 개명(改名) 되었다는 말도 있다.
일설에는 도선국사(道詵國師) 가 세웠다고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