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명수려하여 능성이라 하였다고 하는 능주에는 과연 옛부터 산수풍치가 좋았고 조선 초기에는 능주가 바다였다는 사실을 선현들의 시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산수가 좋아 그러했던지 옛날엔 비봉산(飛鳳山)에 각양각색의 새들이 울창한 송림 속에서 모여 살았다고 한다.
학, 두루미, 왜가리, 따오기, 갈가마귀, 까치, 맵새, 굴뚝새, 물총새, 백로, 황새, 까마귀, 참새, 부엉이, 독수리, 참매, 해동청새매, 보라매, 꿩, 비둘기 등등.......
수십종의 새들이 모여 살던 새들의 천국이었다.
이 새들이 서식할 때까지는 능성고을이 부향으로 이름 높았으며 귀인들도 많이 배출되었다 한다.
그러나 산아래에서 살던 사람들은 괴로움이 많았다.
온갖 새들의 배설물의 악취가 고약했고 곡식이 잘 자라지 않아 오곡백과에 그 피해가 적지 않았다.
밤이면 시끄러운 새소리에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불길한 징후로 까마귀까지 극성을 부렸다.
이 새들은 영험이 있어 나라에 변란이나 조정에 흉변이 있을 땐 어김없이 요란스럽게 울었다.
정암선생 조광조가 사약을 받고 원통하게 사사할 땐 연 삼일을 주야로 호곡하였다 한다.
그런데 산 밑에는 완악하고 무식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
「원! 시끄러워 못살겠다. 에이! 저 귀찮은 새들을 전부 없애버려야지.」
삼동의 어느날 밤 그는 모든 새들을 없애기로 작정하고 부싯돌과 쌈지를 품에 넣고 뒷산에 올라갔다.
억새숲 속에서 부싯돌로 숲에다 불을 놓았다.
그는 남의 눈에 띄일새라 살금살금 집으로 들어와 태연히 잠을 잤다.
억새에 붙은 불길은 엄동의 세찬 바람을 타고 점점 넓게 번지어 이윽고 온 산을 시뻘건 불꽃으로 감싸 버렸다.
순식간에 번진 세찬 불길을 피하지 못한 새들은 모조리 처절하게 타 죽고 말았다.
이튿날 마을사람들은 처참한 모습의 뒷산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불에 다 타버린 잿더미산의 창공에서 봉황새 한 마리가 구슬프게 울면서 빙빙돌고 있었다.
알고 보니 불에 타 죽은 숫봉황새의 시체주위를 선회하면서 슬프게 우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도 슬피우는 봉황새의 모습에 눈시울을 붉히고 옷고름으로 눈물을 닦았다.
봉황새는 먹이도 먹지 않고 칠일간을 빙빙돌면서 울다지쳐 숫봉황새의 시체 옆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순절한 새의 넋을 불쌍히 여겨 함께 묻어주었다.
그후로부터 이 산을 비봉산이라 하였다 한다.
숫봉총은 찾을 길 없고 전설만 전해오고 있다.
많은 새들이 원통하게 불에 타 죽은 뒤부터 능성 고을에는 재앙이 그치지 않고 역질이 만연되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죽었으며 그 이듬해에 홍수가 덮쳐 수백명이 일시에 몰사를 하는 등 흉사가 잦아 조정에서도 치장을 하여 주었다고 한다.
이 사실은 국사연보에도 기록되어 있다.
지금은 봉황새는 아주 멀리 가버리고 이름만 남아 있는데 요즈음 풍수지리설을 말하는 이들은 비봉포란의 혈이 있다고 말한다.
지금도 능주의 입구 근처 들판에는 흙으로 높게 쌓아올린 대가 있는데 옛 왕릉을 방불케 한다.
봉황새 두 마리가 사라져버린 뒤, 능주고을에 재해가 그치지 않았을 때, 어느 날 낯선 나그네 한 사람이 이곳을 지나다가 탄식을 했다.
「야단 났구만!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가 결단이 나겠는걸. 옳지 저기다가 대를 쌓으면 되겠구만. 빨리 서두르시오.」
하고 일러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뛰어나와 대를 쌓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봉란대라 했다.
마치 봉의 알처럼 생긴 이 대가 완성된 후로, 그렇게 극성을 부리던 재앙이 이 지방에서 말끔히 사라졌다 한다.
봉란대는 영벽정 건너 들판 속에 지금도 소복이 솟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