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한천면 한계리 뒷산 일대를 옛날엔 금오산이라 하였고 고려와 조선을 통하여 많은 병란에 호국의 숨결을 지닌 성터가 지금도 남아 있다.
고려 때에 이 산밑에 늙은이와 그의 외동딸이 살았는데 딸은 얼굴도 어여쁘고 효심이 지극하여 아버지를 극진한 정성으로 받들었다.
항상 귀엽고 얌전하며 곱게 자라는 딸을 보는 늙은 아버지는 흐뭇한 정에 넘쳐 아내를 잃어버린 슬픔도 잊은 채 항상 즐거운 나날을 보내었다.
어느 해 여름 소나기가 앞을 가릴 수 없이 내리더니 천지간에 다리를 놓은 듯이 오색찬란한 무지개가 장관을 이루었다.
비와 안개가 걷히자 날씨는 더욱 맑았다.
처녀는 물동이를 들고 장독대 곁에 있는 샘가에 가보니 샘에는 그전에 없었던 새끼용과 황금빛 자라 한 마리가 있었다.
그 날 밤, 처녀의 꿈에 그 용과 자라가 나타나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하늘에서 죄를 범하여 옥황상제의 진노하심으로 세상에 쫓김을 당했습니다. 저희들을 세상 사람들 모르게 십 년 동안만 감추어 길러주시면 반드시 보은하겠습니다.」
깨어보니 꿈이었다.
이 꿈을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더니 아버지께서도 같은 꿈을 꾸었다는 것이었다.
용과 자라의 말대로 십 년간 감추어 기를 것을 부녀간에 굳게 약속하고 밖으로 나와 샘을 더 깊이 파고 큰돌로 덮어 샘이 아닌 것처럼 위장하였다.
그리고 다음날에 다른 곳에 샘을 파고 그 곁에 장독대를 옮겼다.
그런데 용과 자라가 특히 좋아하는 먹이가 있다는데 용은 제비를 먹어야 수염과 뿔이 난다고 하며 자라는 새우를 먹어야 잘 자라고 황금빛이 돋아 입으로 서기를 토해 천년을 사는 영물이 된다는 것이었다.
늙은 아버지는 틈틈이 제비와 새우를 잡아 샘 속에 넣어주어 용과 자라의 승천을 도와주었다.
아무도 모르게 숨겨 길렀지만 십 년이 다 되자 마을 사람들이 우연히 알게 되었다.
어린 용은 이제는 파충류의 왕인 용의 몸으로 되어있었다.
기실 용의 머리는 낙타 같고, 뿔은 사슴과 같으며 눈은 토끼눈이요, 귀는 소의 귀요, 목은 뱀의 목, 배는 이무기의 배라, 비늘은 잉어의 비늘 같고 발톱은 매의 발톱이었다. 발바닥은 범의 발바닥처럼 튼튼하였으며 등에는 팔십일개의 비늘이 일고 입의 양옆에는 수염이, 턱밑에는 구슬이 붙어 있고, 목의 인후에는 거꾸로 난 비늘이 있어 울음소리가 구리쟁반을 굴리는 소리가 난다고 하였다.
이렇게 모든 격을 갖추어 성장한 용이 다시 꿈에 나타났다.
「이젠 하늘로 돌아가야겠습니다. 내일 밤 자정에 샘에 덮은 돌을 열어 주십시오 」
하고 용은 눈물을 흘렸다.
부녀는 다음날 밤, 자정에 샘 뚜껑을 열어 주었더니 용은 하늘을 향하여 안개구름을 토하고 비바람을 일으켜 승천하였다.
결국 용은 이렇게 승천하고 자라만 홀로 남게 되었다.
자라도 이젠 십년이 되어 전신에는 황금빛이 번쩍이고 등에는 찬란한 광채가 더해 머지않아 서기를 뿜고 승천하게 될 즈음이었다.
그 해 궁중에서는 상감께서 병으로 눕게 되었는데 어의가 진맥한 결과 황금빛 나는 금 자라를 먹으면 즉시 나을 수 있다고 하니 전국에 금 자라를 잡아오면 천 량의 상금을 주기로 방을 붙이는 한편, 각 고을에 영을 내렸다.
빨리 잡아 올리는 방백 수령에겐 특전이 있다고 하였으므로 더욱 금자라 찾기에 혈안이었다.
그러나 금자라를 보기는커녕 그런 자라가 있다는 소문도 듣지 못한 터였다.
갈수록 상감의 병세가 위중해지자 말단관직인 이방, 형방, 심지어 서리, 중방까지 모두 동원해서 백성들에게 금자라 찾기를 권하였다.
하루는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부녀가 살고 있는 집의 샘속에 용과 자라를 보고자 하더니 차츰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이 소문이 한동안 퍼지더니 급기야 관가에서 부녀를 찾았다.
「저기 샘에 덮어놓은 돌을 열어보아라!」
부녀는 하는 수 없이 뚜껑을 열고 샘속을 보도록 하였다.
용은 이미 승천해 버리고 황금빛 자라가 먹이를 찾는 듯 맑은 물속에서 올라와 사면으로 두리번거렸다.
「와! 금자라다!」
「금자라를 찾았다.!」
관아에서 온 관속들은 함성을 지르며 춤을 추었다.
「이 금자라를 임금님 앞에 바치면 상금이 천량이랍니다.」
관속들은 부녀에게 즉시 금자라를 잡아 관가에 바치라고 재촉했다.
부녀도 울고 금자라도 이를 알았는지 눈물을 흘렸다.
부녀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상감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는 일이라 관속들의 재촉은 성화같았다.
「시간이 촉박하오.」
관속들은 참지 못하고 서둘러 금자라를 잡아가지고 능성고을 원님에게 바쳤다.
원님은 방백에게 방백은 개경으로 올라가 상감에게 바치니 금자라는 애석하게도 전의의 손에 죽어 병든 상감의 약이 되고 말았다.
상감은 금자라를 먹고 즉효를 보아 흡사 선약이나 먹은 듯 병이 나았다고 하나 천량의 상금을 받은 부녀는 부자가 되긴 하였으나 날마다 금자라 생각으로 눈물을 흘렸다.
한편 금 자라도 죽은지 삼일만에 다시 꿈에 나타나 눈물을 흘렸다.
「전생의 인연을 따라 나는 다시 신선이 되었으니 산계와 사바는 길이 달라 낮에는 갈수 없으나 밤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늙은 아버지와 딸은 밤마다 금 자라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어느 날, 하늘 높고 달 밝은 밤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두 신선이 내려왔다.
먼저 천상에 오른 용은 자운선이 되고 금자라는 백운선이 되어 정중히 인사를 하면서 천도두개를 바쳤다.
그뒤 부녀는 천도를 먹고 삼백년을 영화스럽게 살다가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한천 혹은 참샘이라고도 하나 옛날에는 용이 살았다고 하여 용천, 금 자라가 있었다고 하여 금오천 다시 금정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산은 금자라가 나왔다고 하여 금오산(金鰲山) 이다.
어느 불량배가 천량의 돈이 탐나 큰 자라를 잡아 황금빛 물감을 바르다가 하늘의 벌을 받아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고 자라는 바위로 변하여 지금도 우봉리 산골짜기에 자라바위가 있는데 살아 있는 자라처럼 역력하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