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의 2대 주지인 진각국사의 출생에 얽힌 전설이 서려 있는 자취샘은 화순읍 향청리에 있는 석간천으로 가뭄이 재 아무리 계속되어도 마를 때가 없고 무더운 삼복에는 더위를 식혀 주는 시원한 물맛으로도 이름이 높은 샘이었다.
때는 고려시대로 이 샘에 가까운 마을에 배씨가 살고 있었다.
배씨는 우직하리만큼 온갖 정성을 쏟으며 고을을 위해 헌신해 오고 있는 말단 향이로 그 슬하에는 효심 깊은 과년의 딸이 있었다.
당시는 고려조가 부패되어 있던 때인지라 그 관속인들 온전할리 없었다.
농민들의 피땀어린 곡물에 수탈의 마수를 이곳 저곳에서 자행하는 판국이라 이 지방에도 그 피해가 커져만 갔다.
여기에 의분을 참지 못한 배씨는 수탈한 관원들에게 욕설을 퍼부어 끝내는 옥에 갇히게 되었다.
애매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힌 배씨가 풀려나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딸은 옛부터 온갖 지성을 다하면 모든 소원이 성취된다고 전해져 오는 샘에서 이른 새벽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세라 컴컴한 밤중을 무서운 줄 모르고 오직 정성으로 첫닭이 울면 이 샘터에 와서 정화수를 떠다가 신령님께 아버지의 석방을 기원하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이른 새벽에 온갖 효녀의 관심을 쏟고 있는 엄동설한인 어느날 정화수를 뜨다가 바가지에 부딪치는 소리에 놀랬다.
희미한 달빛아래 자세히 살펴보니 참외 두 개가 떠 있지 않은가.
이 겨울철에 때아닌 참외가 떠 있다니 신기하다고 생각하고 한참 바라보고 있을 때 머리위에서 낭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낭자야 그대의 효심에 감동한 신령님이 보내 주신 것이니 서슴치 말고 갖다 먹어라. 그러하면 그대의 소원이 성취되리라」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 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여운만이 샘터를 울려올 뿐이었다.
배씨 딸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소원이 성취된다는 말에 누가 볼새라 집에 가지고 와서 그 자리에서 먹었다.
참외를 먹고 난 뒤부터 배씨 딸은 이상한 증세가 생겼다.
처녀의 몸인데 태기가 있지 않은가 무슨 해괴한 일이란 말인가.
배씨 딸은 누가 알까봐 가슴속으로 끙끙 앓고만 있었지만 달이 흐름에 따라 배는 점점 불러왔고 만삭이 되어 마침내 옥동자를 낳고 말았다.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낳았는데 이 아이를 어떻게 길러야 한단 말인가」
배씨 딸은 앞일이 캄캄하여 막막하기만 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고심의 나날을 보냈다.
끝내는 모진 마음으로 이 아기를 남 모르게 버릴 것을 결심하고 야심을 이용하여 집에서 서남쪽으로 핏덩이인 아기를 안고 걸어갔다.
오리쯤 가자 들 가운데 수림이 우거진 얕으막한 야산이 있었다.
괴목 아래에 아기를 보에 쌓은채 버리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도 눈앞에 아롱거리는 아들의 모습에 걷잡을 수 없어 집밖으로 뛰쳐나와 가고 다시 모진 마음으로 되돌아오기를 되풀이 하다가 날이 밝아오자 사람의 눈에 뜨일까 겁부터 나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엄동에 버려진 핏덩이인 아기는 어디에서 날아 온 지도 모르는 무수한 학들이 날개를 펴고 아기를 감싸아 추위에 얼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었다.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선비인 최씨가 기이한 학들의 모습에 발을 멈추고 바라보다가 학들이 감싸고 있는 물체가 무엇인가 궁금하여 가까이 가 보았다.
학들이 사람의 출현에 놀라 하늘로 날아 주위를 맴돌고 있는 학이 감싸고 있던 것을 보니 갓난아이가 아닌가. 최씨는
「이것은 필히 무슨 조화가 있다. 예사로운 일이 아니로군」
혼자말을 하며 이 아기를 안고 그 길로 관아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고하였다.
그리고 현감에 청하기를
「소인의 슬하에 자식이 없어 적적한 형편이오니 원컨대 이 아기를 데려다 기르게 하여 주옵소서」 하였다.
원님은 이에 다음분부가 있을 때까지 우선 데려다 기르도록 허락하였고 그리고 이방(吏房)을 시켜 아기를 낳은 여인을 찾아 대령하도록 하였다.
현감 앞에 잡혀온 배씨 딸은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낳은 소녀의 죄를 벌하여 주옵소서 소녀는 옥에 갇힌 아버지의 방면을 기원하기 위해 새벽마다 샘에 정화수를 뜨러 갔다가 샘물 위에 떠있는 참외 두 개를 먹고 배가 불러오고 마침내 옥동자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처녀의 몸으로 난 아기이기에 사람의 이목이 두려워 모진 마음으로 버리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현감 앞에 엎드린 배씨 딸의 말을 듣고 난 현감은 이것은 신령님의 조화가 틀림없고 또 효심에 탄복하여 그 자리에서 배씨 부녀를 석방하였다.
학의 보호를 받고 생명을 부지하였던 아기는 최씨 집에서 정성껏 양육되어 후일에 우리 불교사의 명승 진각국사(1178~1234)가 되어 송광사 2대 주지로서 그 해박한 지식과 불법으로 많은 명승을 길러 낸 장본인이다.
그 후로 이 샘을 진각국사의 자취(적)가 깃든 샘이라 하여""자취샘""이라 한 것을 세월이 흐르면서 와전되어 자치샘(적천:차천)이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학이 날아와서 진각국사의 어린 생명을 보호한 곳에는 직경 3m 둘레 9m의 천년수령을 자랑하는 노거수(老巨樹)가 지난날의 산 증인처럼 서 있었는데 1927년 5월 목동의 실화로 소진되었다.
학이 날아와 살았기에 학서도(학사리·학정자)라고 지금도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