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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구비문학, 화려한 축제로 비상하길

- 화순 운주사 천불천탑 설화를 중심으로

박준희 기자 hoahn01@hanmail.net
2023년 01월 16일(월) 15:26
[화순군민신문=박준희 기자] 언어에 방언이 있어 지방색을 띠고 있듯이 문학에도 지역문학이 있어 독자적인 지방색을 담고 있다. 지역에서 창작되고 소통되며 전승되는 지역문학은 문학으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지역의 현실과 문제를 일정한 양식으로 갈무리하고 있는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지역문학의 성격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 방언에 의해 표현되는 구비문학이다. 구비문학은 사실상 지역문학으로서 표현매체만 지역적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에 거주하며 생활하는 지역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그 지역의 현실과 문제를 형상화하고 그들끼리 전승하며 공유한다는 점에서도 지역문학의 성격이 강하다. 이것이 기록문학과 구별되는 구비문학만의 문학적 실상이라 할 수 있다.

[미완의 운주사 설화, 더 큰 상상력을 만들어]

매스미디어가 발달하고 공동체 생활이 붕괴된 현대사회는 여러 환경적 요인으로 인하여 구비문학이 점점 더 설 자리를 잃고 사라지게 돼 안타깝다. 하지만 학계의 지대한 관심과 지역의 문화원 그리고 향토학자들의 노력으로 일부나마 마을에 구비문학이 살아 생생하게 전승되는 점은 퍽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구비문학에 대한 보존의 가치와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오히려 확산되는 양상이다. 마을사람들끼리 전승하는 마을 고유의 구비문학 작품에서부터 지역의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구비문학, 나아가 전국적으로 널리 전승되는 작품에 까지 구비문학은 다양한 층위를 이루면서 전승되고 있다. 구비전승된 문학은 어느 것이나 지역 공동체를 기반으로 형성되고 전승되며 전파되고 확산되는 것이므로 그 자체만으로 지역성을 지닌 지역문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구비문학은 지역문학으로서 지리적 한정성을 지니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구비문학을 지어내고 향유하는 인간적 공통성과 상상력의 동질성으로 또는 전파에 의한 구비문학의 지리적 확산으로 말미암아 지역문학의 한계를 넘어서기도 한다.

구비문학 가운데 가장 보편성을 지닌 것이 설화이다. 이는 편의상 신화 전설 민담으로 구분하여 사용된다. 그 중에서 지역적 성격이 가장 강한 전설은 그 지역의 자연물이나 역사유적 및 인물을 구체적 증거물로 삼아 형성되고 전승된다. 그러므로 증거물에 따른 제약과 지역적 한계를 지니고 있어 문학적 상상력을 제약하는 역기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의 문화유산과 자연물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현실 속에 살아있도록 재조명해 주기 때문에 지역문화를 오히려 풍부하고 더욱 의미 있게 하는 순기능의 측면이 더 강하다. 전설을 통해 해당 문화재의 기원과 유래를 찾을 수 있고 그 의미를 재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전설은 낡고 고리타분한 과거의 골동품이 아니라 문화재를 현실적인 삶 속에 생생하게 되살려 잃어버린 역사의 자취를 해명해 주는 중요한 구실을 하기도 한다. 화순지역에 산재한 많은 설화들 중 미완의 꿈이 서려 있는 운주사 창건설화가 오늘에 재생되어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운주사는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천불산 기슭 나지막한 산속에 위치한 사찰이다. 운주사 건립의 주체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난무할 뿐 지금껏 베일에 가려져 있다. 운주사 창건설화는 신라말 도선국사가 도력으로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만들어 세웠다는 도선국사 관련설과 신라의 고승 아도화상(阿道和尙)의 창건설,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만들어 세우면 미륵의 세계가 열린다는 미륵신앙 연관설 등 다양하지만 도선국사 관련설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운주사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어 창건의 시기나 목적 그리고 창건의 주체를 규명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옛날 도선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이곳에 천불천탑을 세우기로 하였다. 하늘에 대고 기도하자 하늘에서 천여 명의 선동선녀가 내려와서 불상과 불탑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역사는 반드시 하룻밤 사이, 첫닭이 울기 전까지 마쳐야 하는 일이었다. 날이 새면 선동선녀가 하늘로 올라가 버린다. 도선국사는 해가 뜨는 것을 늦추기 위해 일봉암이라고 하는 바위에 해를 묶어 두었다. 새벽녘까지 모든 일이 순조로워 천불천탑이 거의 다 조성되고, 이제 와불만 일으켜 세우면 모든 일이 마무리 될 터였다. 그런데 일을 돕던 국사의 상좌가 일에 지쳐 그만 첫닭 우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러자 와불을 세우려던 하늘의 선동선녀들이 일순간에 모두 하늘로 돌아가 버렸다. 그래서 와불은 세워지지 못한 채 지금도 그렇게 누워 있다는 것이다.

[천불천탑의 비원에서 좌절과 고통을 이겨내고]

이는 운주사에 얽혀 있는 도선국사와 관계된 설화이다. 허나 이 설화의 핵심은 단연 千佛千塔과 臥佛에 있다. 이는 황석영이 지은『장길산』의 후반부에 묘사되어 운주사가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당시 신라관군에 쫒긴 백제유민들이 후백제 부활을 꿈꾸고 이를 위해 하룻밤 사이 천불천탑을 세우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마지막 와불을 일으켜 세우지 못하는 극적인 좌절감과 함께 언젠가는 와불을 세우겠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천불천탑과 와불 속에 내재되어 전승된 수많은 이야기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수많은 향유층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안겨주었다. 천불천탑의 모습은 장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일반적인 불상과 탑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기에 불상이나 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교함이나 예술미는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파격적이며 비예술적이다. 어쩌면 불상이나 탑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석질이 불량한 돌멩이에 가깝다. 그러한 투박하고 볼품없는 탑과 불상이었기에 더 큰 생명력을 가지고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운주사는 그곳의 불상과 와불에 얽혀 있는 설화가 점점 더 생명력을 가지고 기층민들의 삶의 애환과 소망의 끈으로 연결되어 결국 미륵신앙의 성지처럼 알려졌다. 그런데 이를 증명할 구체적 근거는 별로 없다. 산등성이에 머리를 아래쪽으로 둔 채 거꾸로 드러누운 와불을 上足下首의 이미지로 하여 미륵이 일어섬과 동시에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용화사상으로 해석하여 미륵와불이라 불려지고 있다. 설화적 요소를 제외하더라도 이 와불은 그 위치와 규모, 형상으로 보아 천불산 기슭에 흩어져 있는 천불천탑 중에서 가장 중심적인 불상임이 틀림없다. 천불천탑의 대불사를 일으키고도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는 우두머리 부처를 일으키지 못하고 말았다. 어쩌면 이러한 미완성의 세계에 깃든 아쉬움과 애석함의 여운이 운주사를 과거 속에 묻어버리지 않고 오늘까지 살아있게 한 것이 아닐까? 아니 머나먼 미래에까지 운주사가 예술적 생명력을 가지며 억겁의 세월을 역사와 함께 할 것이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은 운주사의 그 비원 위에 현실로부터 오는 삶의 좌절과 고통, 불안 등을 이겨내고 삶의 원천인 희망과 꿈을 거기에서 계속적으로 수혈 받을 것이다.

미륵은 석가불의 제자, 즉 阿逸多로 이 지상에서 죽은 후 그가 수행한 공덕으로 천상계 사천의 최상위인 도솔천에 태어난다. 그곳에서 천복만을 받는 안일한 보살이 아니라 석가의 교화를 받지 못한 중생들을 위하여 교화, 설법하는 등 더욱 수행에 정진하여 무한한 공덕을 쌓고 있는 보살이다. 그는 현재불인 석가에 이어서 다음 대의 부처가 되기로 정해져 있는 보살이므로 미래불이라고도 하며 메시아처럼 미래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혼란기에 접어들수록 미륵이 갖는 미래성 때문에 미륵신앙은 기층 민중들에게 널리 수용되었으며 그 결과 미륵신앙이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다. 혼란기인 후삼국시대에 접어들자 궁예는 자신이 미륵의 화신임을 자처하며 미륵신앙을 지배자들의 통치이념으로 이용하였다. 미륵신앙이 갖는 종교적 요소와 결합되어 운주사의 천불천탑과 와불은 고난의 땅에서 구원의 세계를 염원하는 메시아로 다가와 당시의 민중들 사이에 널리 수용되었을 것이다. 운주사 창건설화를 가진 운주사는 전설의 중요한 증거물이 되고 이야기 창작의 소재가 되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던 사건을 사실적인 이야기처럼 창작할 수 있도록 하는 구비문학 생산의 긴요한 밑천 구실을 하였다.

운주사 창건설화가 전승적 토대가 된 화순 운주대축제가 운주사만의 창건설화를 간접 체험하기 위한 축제로서 전승적 기반을 확대시켜 주며 운주대축제의 전통성과 당위성을 설명하는 근거를 제공하였다. 제1회 운주대축제가 1996년 10월 31일부터 11월 3일까지 4일간에 걸쳐 화순군의 주관으로 개최되기 시작하여 2002년 제7회 운주대축제까지 개최되었다. 그러던 운주대축제는 2003년 제 8회 대회 때는 화순군 축제에서 도암면 축제로 변경, 축소되어 개최되고 있다. 화순군의 대표 축제는 ‘화순고인돌축제’, ‘화순풍류문화큰잔치’, ‘화순 힐링푸드 페스티벌’ 등으로 이어 오다가 현재는 국화축제가 화순군의 대표적인 축제가 되었다. 화순군의 군화가 국화이고 가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으로 산자수려하고 청정한 화순지역의 이미지에 부합할지라도 국화축제는 화순만이 갖는 역사적, 전통적 연관성을 찾아보기에는 다소 미흡하다.

축제(festival)는 개인 또는 공동체에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사람 간의 결속력을 제공하는 사건이나 시기를 기념하여 의식을 행하는 행위로 라틴어 'festivalis'에서 유래하였다. 이것은 축제의 뿌리가 종교의례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종교적 기원으로서의 축제는 강력한 사회통합력을 지니며 때로는 축제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과 의사소통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대표적인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축제가 타지역과 상대적으로 비교우위에 있어야 하며 그곳만이 갖는 역사성과 독자성이 있어야 한다. 화순의 축제도 화순만의 독자성과 역사성에서 끌어낸 화순지역의 대표적인 축제로 거듭났으면 한다. 설화의 비원을 소재로 재탄생한 운주대축제는 화순지역만이 갖는 전통성과 역사성이 되기에 충분하며 천불천탑의 이루지 못한 꿈을 오늘에 재현하고자 열리는 축제로서의 의미를 한껏 되살렸으면 한다.

[지역문화를 되살려서 사회적 통합력을]

전설은 오래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지역의 옛 지역문화 유산을 되살려내는 일을 수월하게 감당한다. 그리고 설화의 내용을 담보하는 증거물이 되고 자력적 생명력을 지녀 구비문학의 전승력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기에 유산으로서의 가치 또한 넘친다. 그렇기 때문에 운주사 창건설화를 간직한 운주대축제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와불을 일으키려는 마음을 회복하고 광주 전남지역만이 갖는 소외와 차별을 넘어 평등 평화의 세상, 민주주의 완성, 인권의 신장, 남북통일 등 천불천탑에 대한 소원을 빌며 와불을 일으키려는 마음으로까지 확대되었으면 한다. 운주대축제는 화순에서 열리지만 그 축제의 의미는 지역과 국경을 넘어 지구촌 곳곳까지 전파, 확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같이 장구한 세월 동안 일으켜 세우지 못한 와불은 오늘에 와서도 일어나지 못하고 끝내 지구가 존재하는 한 미완으로 끝날지 모른다는 아쉬운 마음을 와불에 담아본다.

이건호/문학박사 전 능주중학교 교장

박준희 기자 hoahn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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